2018. 11. 제64호국립한글박물관 소식지

한글 나누기 1

가르치는 보람
배우는 기쁨

인터뷰. 윤명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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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가 넘쳐나는 시대이다. 이런 시대에 글을 모른다면 세상은 어떻게 보일까? 상상하지도 못했던 질문이다. 답변도 쉽게 떠오르지 않는다. 이런 시대지만 아직 한글을 몰라 한글을 배우고 있는 어르신들이 있다. 그리고 그런 어르신들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기꺼이 기부하여 어르신들을 가르치고 있는 분이 있다. 바로 윤명자 교사다. 윤명자 교사의 어르신 한글 교실에 참석해 한글을 가르치는 행복과 배우는 행복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1년간 어르신 한글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윤명자 교사▲ 11년간 어르신 한글 교실을 운영하고 있는 윤명자 교사

Q1. 

귀한 시간 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식지 구독자분들에게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려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안녕하세요. 저는 초등학교 교사로 42년을 재직하다가 2007년에 정년퇴직을 한 윤명자라고 합니다.퇴직 후 11년간 어르신들에게 한글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Q2. 

퇴직 후 11년간 어르신들께 무료로 한글을 가르치고 계십니다. 어르신 한글 교육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현직에 있을 때에도 아이들과 함께 노인 혹은 장애인을 돌보는 기관을 찾아가 봉사를 했었습니다. 퇴직 후 지인이 한글반 어르신들을 가르칠 교사가 없다는 말을 하면서 해줄 수 있냐고 하길래 쾌히 승낙하고 그때부터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또 현직에 있을 때 이웃에 사는 분들이 제 아이들을 돌봐주시기도 하고 집도 봐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도움받았던 것을 돌려줘야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고요. 한글을 모르면 얼마나 불편하실까 하는 생각에 지금까지 열심히 가르치고 있습니다.

Q3. 

이전에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과 지금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것에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아이들은 무언가를 설명해주고 가르쳐주면 잘 알아듣고 한 번에 기억하는데 어르신들은 열 번을 가르치고, 반복에 반복을 해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다시 물으십니다. 끝없이 반복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아이들은 말을 잘 듣는 데 비해 어르신들은 고집이 세셔서 자주 우기기도 하십니다. 이러한 점들이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가르치는 데 다른 점입니다.

한글 교실 풍경▲한글 교실 풍경

Q4. 

어르신들께 처음으로 한글을 가르치실 때 겪었던 어려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었나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한글을 배우는 분들 중에는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도 있고 저와 나이가 같은 분도 있습니다. 그렇다보니 각자의 수준이 다 다릅니다. 한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분이 있는 반면 한글을 어느 정도 알아 글을 떠듬떠듬 읽을 줄 아시는 분도 있습니다. 한글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분들에 맞춰 자음과 모음을 가르치고 글자 만드는 원리를 알려주고 있노라면 이에 대해 아는 분들은 지루해하기도 하죠. 수준에 따라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특히 어려웠습니다.
글을 배우려면 읽기와 쓰기를 해야 해서 글자 공부뿐만 아니라 문장 공부도 병행해야 하는데 한번은 글짓기를 시도했다가 글씨도 모르는데 그런 걸 어떻게 하냐고 불만을 터뜨리셔서 많이 속상하기도 했지요.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지만 계속 수업을 진행하다보니 단련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실력이 늘어서 어려운 것도 잘하시기 때문에 제 마음대로 수업을 진행합니다. 나는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여러분은 배우는 학생이라고 큰소리치면서요(하하).

Q5. 

반대로 어르신들이 한글을 배우실 때 겪는 어려움에는 어떠한 것들이 있나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어르신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것은 받침 쓰기입니다. 한 분은 세종대왕께 왜 받침을 만드셨냐고 푸념을 하셨을 정도로 다들 어려워하시지요. 그래서 받아쓰기를 하면 알 듯해서 쓰긴 쓰셨는데 제대로 쓰지 못하시는 경우가 많아요. 제가 칠판에 답을 쓰면 손뼉을 치면서 그제야 알겠다고 말씀하시는 경우도 다반사지요. 이런 상황이다 보니 획이 복잡한 낱말 쓰기를 굉장히 어려워하십니다. 동음이의어를 설명할 때에도 진땀을 빼지요. 어르신들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 사전을 얼마나 뒤졌는지 모릅니다. 이러한 점에서 어르신들이 아이들보다 더 많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습니다. 어르신 중에는 80대도 계시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르신들의 읽기 연습▲어르신들의 읽기 연습

Q6. 

11년간 어르신 한글 교육을 하시면서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웠던 순간과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가르치고 가르쳐도 진전이 없어 보이는 것이 가장 큰 어려움이었어요. 귀가 잘 안 들리셔서 크게 소리를 쳐 알려드렸는데도 다시금 되물어 보실 때는 기운이 빠지기도 하죠. 하지만 진전이 없어 보일 뿐이었지 진전이 없는 건 아니었어요. 반복을 해도 잊어버리시지만 더 많은 반복을 통해 결국엔 습득하시더라고요.
수없는 반복을 통해 지금은 일기도 쓰시고 편지도 쓰십니다. 문자 메시지로 제게 안부를 묻기도 하시고요. 이럴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껴요. 삐뚤빼뚤한 글씨에 맞춤법도 틀린 내용이지만 제게 고맙다고 편지를 써 주시시면 그간의 어려움이 싹 잊히는 것 같습니다. 아침마다 문자를 보내 안부를 물어 오실 때면 감사하기도 하고요. 그런 감동의 순간에도 저는 선생의 본분을 잊지 않고 틀린 부분들에 대해 말씀을 드립니다. 이제는 처음과 다르게 엄청 잘 쓰세요. 어르신들께 받은 편지를 하나도 버리지 않고 모으고 있는데요. 이 편지를 모두 모아 책으로 만들어볼 생각입니다.

Q7. 

가장 기억에 남는 어르신 제자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한번은 처음 보는 어르신이 한글교실에 오셨어요. 광주에 사시다 남편께서 편찮으셔서 아들네로 이사를 오신 분이었는데요. 한글을 몰라 어려웠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한글을 배우고 싶다고 하셨어요. 남편 분이 고위 공직자셨는데 남편 모임에 갈 때마다 마음을 졸이면서 말 한 마디 안 하셨다고 해요. 행여나 입을 뗐다가 자기가 글을 모른다는 걸 들킬까봐 노심초사하셨대요.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어르신을 두고 참 얌전하시다고 칭찬을 했다고 하시네요. 이런 하소연을 하시면서 지금까지 한글을 잘 배우고 계십니다.
다른 한 분은 가정형편으로 부모님이 학교를 보내지 못해 한글을 배우지 못한 분이셨는데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대단하셨어요. 돈을 받으며 이웃집 갓난아이를 들쳐 엎고 돌보고 있을 때면 친구들이 학교를 마치고 돌아왔다고 해요.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팠을까요? 그렇게 못 배운 것에 대한 한을 갖고 계시면서도 기회가 닿지 않아 공부를 못하셨어요. 그런데도 장사를 아주 잘하셨어요. 외상을 줄 때 글을 모르시니 이름을 적을 수가 없어 이 사람은 작대기 하나, 저 사람은 작대기 둘, 이렇게 구분하셨다고 합니다.
한글을 못 배우신 분들 중에 가슴 찡한 사연을 안 갖고 계신 분이 없어요. 다들 고생을 많이 하셔서 항상 안타까운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분들을 위해 제 힘이 닿는 데까지 가르치려고 마음먹고 있습니다.

교사의 교육열과 학생의 학구열 모두 높다.▲교사의 교육열과 학생의 학구열 모두 높다.

Q8. 

어르신들께 한글을 가르다는 것이 선생님께는 어떠한 의미인가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저는 어르신들과 한글만 공부하지 않습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독도가 어디에 있는 섬인지를 알아가며 상식도 쌓고, 노래도 부릅니다. 어떨 때는 수업 전에 체조를 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교실에서의 공부가 한글 공부로만 그치는 것을 바라지 않아요. 바른 인간을 만드는 데 기여하는 장소가 되길 바랍니다.

Q9. 

한글을 가르치는 것이 선생님께 어떠한 행복이 되나요?

윤명자 교사
윤명자 교사
교직에 42년 있었던 제가 제일 잘할 수 있는 일은 가르치는 일입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을 통해 힘든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우리말과 글에 눈을 뜬 어르신들은 제게 행복을 줍니다. 글씨를 틀리지 않고 편지를 제대로 쓸 수 있을 때까지 가르쳐 달라는 어르신들을 통해 저는 제 힘이 충전되는 것을 느낍니다. 그렇지만 이러한 행복은 저만 느끼는 것이 아니에요. 저를 통해 어르신들도 함께 느끼는 감정이지요.
어르신들을 11년간 가르치다보니 이제는 나이가 비슷해졌습니다. 선생과 학생이 아닌 언니동생, 친구가 되었습니다. 서로의 가족들을 속속들이 알게 되었고 서로의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하여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합니다. 한 가족처럼 함께 지내는 이 시간이 정말 행복합니다. 제 힘이 닿는 날까지 이웃에게 많이 받았던 것처럼 많이 돌려준다는 심정으로 오래오래 가르치려 합니다.

인터뷰 질문지로 글짓기를 연습하는 모습▲ 인터뷰 질문지로 글짓기를 연습하는 모습


한글을 배우시는 어르신들 이야기 1

방혜분(70대 중반)

저는 남편이 반대해서 오랫동안 한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이름 정도만 쓸 수 있었고 아주 천천히 글을 읽을 수 있었어요. 남편은 자신이 대신 해줄 수 있으니 한글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말했어요. 하지만 나이가 들어갈수록 남편이 없으면 저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글을 배울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어렸을 적에 학교에 조금 다니긴 했어요. 처음에는 육성회비가 없어서 다닐 수 있었는데 나중에 육성회비가 생기고 나서부터는 돈을 내지 못해 다니지 못했어요. 시골이라 가정형편 어려워 남동생만 가르치기로 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쓰지는 못해도 천천히 라도 읽을 수 있으니 책을 갖고 다니면서 읽고 싶었는데 빨리 읽지 못하니 책장을 천천히 넘길 수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괜히 다른 사람들이 나만 쳐다보고 있는 것 같아서 자신감이 없어서 책을 갖고 다니지 못했어요. 한글을 배우고 나서 받침이 올라가고 내려가는 걸 알게 되어서 글씨를 제대로 쓸 수 있게 되었는데 그게 너무나 기뻐요.
한글을 다 배우게 된다면 저처럼 한글을 몰라 답답해하는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어요. 한글을 배운 뒤 생긴 저의 희망이에요. 한글을 배워 가장 행복한 것은 우리 아들딸에게 휴대폰으로 문자를 써 보낼 수 있게 되었다는 거예요. 누군가가 저에게 왜 이렇게 잘 쓰냐고, 이제 그만 배워도 되겠다고 하면 신이 납니다. 하루하루 살맛이 나요!

한글을 배우시는 어르신들 이야기 2

김안엽(70대 후반)

어렸을 적 두메산골에 살았어요. 형제가 많았는데 남자 형제만 공부를 시켰지요. 여자 형제는 공부를 시키지 않아서 많이 울었어요. 공부 못한 것이 한이 됐지만 먹고사는 것이 바빠 배우는 것은 포기하고 살았어요. 결혼하고 살면서 남편이 무식하다고 말할 때마다 그게 너무 싫고 서러워서 한글을 배우기로 결심했어요.
한글을 몰라 가장 속상했던 것은 아이들이 학교 숙제를 가져와 알려달라고 할 때 글을 몰라 아이들에게 알려줄 수 있는 게 없었을 때였어요. 어디를 가야 할 때도 글씨를 몰라 버스를 타는 것도 불편했어요. 사는 것 자체가 답답했지요. 그래서 어딜 가도 나서지 못하고 주눅 들어 있었지요.
글을 배웠더니 봉사가 눈을 뜬 기분이 이런 것이지 싶어요. 이젠 버스 타고 가고 싶은 데도 마음대로 갈 수 있고요. 조금 더 배워서 형제들에게 편지도 쓸 거예요.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돌아가신 부모님께 그동안 못했던 말을 편지로 쓰는 거예요. 이게 제 평생의 소망이에요. 한글을 배우고 나니 마음이 항상 행복해요. 한글을 가르쳐주신 선생님께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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