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번째 책사람 강연
<조선 역관, 세계와 통하다>
글. 이윤아 국립한글박물관 사서연구원
20번째 책사람은 논어등반학교 교장 이한우 선생님이십니다. <조선 역관, 세계와 통하다>라는 주제로 조선시대 활약했던 역관들의 이야기와 그들이 공부했던 외국어 교재를 소개해주실 예정입니다. 강연 듣기에 앞서 역관에 대해 조금 알아보겠습니다.
▲ 이한우 논어등반학교 교장
1. 최근에 종영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역관이 통역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 외국어를 잘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로웠는데 정확히 역관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었나요?
‘역관’이란 단어가 생소한 분들도 계실 텐데요. 지금의 동시통역사를 떠올리면 가장 이해하기가 편하실 거예요. ‘통사’라고도 불렸는데, 단순히 말을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일을 서로 통하게 한다는 뜻이 담겨 그 당시에는 ‘통사’라고 더 많이 불렸다고 합니다. 그 역할도 단순히 사신의 수행이나 외국인의 접대에 국한되지 않고 국경에서 접촉자를 감시하고 교역이 있을 때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맡기도 했으며 무역 중개인으로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즉, 외국과의 접촉으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담당하는 실무관리로 보시면 됩니다. 역관은 탁월한 능력의 지식층이었지만 신분이 중인이었기에 양반들의 멸시를 받았습니다.
2. 역관은 조선 최고의 부자였다는 말이 있는데 어떻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나요?
조선시대에는 중국으로 가는 연행사와 일본으로 가는 통신사가 있었는데 이런 사신 행렬에 역관들이 동행하여 현지 통역을 담당합니다. 이때 역관들의 경비는 자비로 충당해야 했습니다. 이에 조정에서는 초기에 ‘팔포제’를 허락하여 역관들의 불법 상행위를 눈감아주었습니다. ‘팔포제’란 역관 1인당 인삼 여덟 포를 가져가 중국에서 팔아 경비를 자체 조달하는 제도입니다. 또한 중앙 및 지방 관아의 은자를 대출받는 방법으로 엄청난 자금을 확보하여 무역활동을 할 수 있었기에 역관은 많은 부를 축적할 수 있었습니다.
3. 지금은 외국어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나 단체가 많은데 그 당시에는 어디서 외국어를 배웠는지 궁금합니다.
외국어의 통역과 번역을 맡아보던 ‘사역원’이라는 국가 기관에서 외국어를 배울 수 있었습니다. 사역원은 태조 2년(1393)에 설치되어 고종 31년(1894)까지 존속했습니다. 사역원 입학은 어려웠습니다. 현직 역관으로 구성된 15명의 심사위원이 있었으며 13명이 찬성해야 사역원에 입학할 수 있었는데요. 지원자의 자질뿐만 아니라 가문까지 심사를 했다고 합니다. 사역원 학생들의 평균 연령은 10대가 60%가량, 9세 이하가 30%가량으로 언어습득을 위해 어린 학생을 우선 선발하였습니다. 외국 출신의 귀화인을 사역원 선생으로 등용하여 가르치도록 했고 암기와 번역, 작문까지 세 달에 한 번씩 평가시험을 치르도록 했습니다. 세종대왕이 사역원에서는 반드시 중국어만 사용토록 하고 어긴 학생들은 횟수에 따라 매질하라는 명을 내렸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학생들의 회화 실력은 크게 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4. 조선시대 활약했던 역관 중에서 소개하고 싶은 역관이 있을까요?
역관 홍순언을 소개합니다. 홍순언의 본관은 남양으로 1530년(중종 25) 한양 중촌에서 역관 홍겸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명나라 사행 도중 만난 여인과의 인연으로 조선 왕실의 오래된 숙제이던 문제(종계변무)를 해결한 사건은 ≪조선왕조실록≫ 등에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종계변무는 명나라 역사서에 고려 말의 권신이면서 정적이던 이인임의 아들이 이성계라고 잘못 기록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교섭한 일로 200년가량 바로잡지 못한 사안이었습니다. 이 어려운 문제를 어떻게 홍순언이 해결할 수 있었는지 역관들의 교과서인 ≪통문관지≫에 담겨 있는 홍순언의 기록을 살펴보겠습니다.
홍순언은 중국의 통주에서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 하룻밤 인연을 맺고자 했다. 그런데 여인이 소복 차림인 것을 보고 그 이유를 물었다. 여인은 부모님의 장례를 치를 돈을 마련하기 위해 몸을 팔고 있다고 대답했다. 그 말을 들은 홍순언은 선뜻 300금을 내주고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았다. 여인이 이름을 묻자 그는 성만 알려주고 나왔다. 훗날 명나라 예부시랑 석성의 첩이 된 이 여인은 홍순언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통문관지≫ 중에서
홍순언이 여인에게 내준 300금은 관아에서 빌려온 돈으로 귀국 후 그 빚을 갖지 못해 평생 옥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당시 선조는 이번 사행에서 종계변무를 해결하지 못한 역관은 목을 베어버리겠다고 명을 내렸습니다. 이에 나설 자가 없어 동료 역관들이 홍순언의 빚을 갚아주고 감옥에 있던 홍순언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명나라로 향했습니다. 명나라에서 홍순언을 맞이한 건 그가 도움을 주었던 여인과 그의 남편 명나라 예부시랑(현재의 외무부 차관) 석성이었습니다. 그 여인은 홍순언에게 큰 절을 올려 감사 인사를 했으며 그 남편은 홍순언이 종계변무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기록을 바로잡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조선의 오랜 외교적 사안이었던 종계변무를 홍순언이 해결하자 선조는 그를 역관으로서는 오를 수 없는 정2품 우림위장(임금을 경호하는 군사의 사령관)에 임명했습니다. 그 후로도 홍순언은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 군대 파견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내는 등 나라의 굵직한 문제들을 잘 해결했습니다.
5. 역관들이 공부했던 외국어 교재가 있을까요?
일본어 교재인 ≪첩해신어≫, 중국어 학습서 ≪노걸대≫, ≪박통사≫, 몽골어 학습서 ≪몽어유해≫ 등이 있습니다. 이런 교재를 ‘역학서’라고 부릅니다. 즉, ‘역학서’란 사역원에서 통역관을 양성하기 위해 간행한 외국어 교재입니다. 조선 초기에는 주로 해당 외국어의 어린이용 교과서 등을 수입해서 외국어 교재로 사용하였고 조선 후기에는 한글로 발음을 달고 그 뜻을 풀이한 언해서들이 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중국어 교재는 ‘한학서’, 만주어 교재는 ‘청학서’, 몽골어 교재는 ‘몽학서’, 일본어 교재는 ‘왜학서’라 부릅니다.
임진왜란을 겪은 후 조선 후기에 회화 위주의 학습서가 유행하였고 임진왜란 때에 왜군에게 납치되었다가 돌아온 강우성은 일본어 회화 교재인 ≪첩해신어≫를 편찬하였습니다. ≪첩해신어≫는 ‘새 말을 빨리 깨우친다’는 뜻입니다. 아래 책을 보시면 일본어 큰 글씨 옆에 작은 글씨로 일본어 음을 한글로 달아놓은 것과 우리말뜻을 표기한 것을 보실 수 있습니다. 내용은 “오늘은 *간품(看品)에 부처 처음으로 보옵고 기뻐합니다.”
*간품은 ‘물건의 품질이 어떠한지 살펴봄’을 뜻한다
▲ ≪첩해신어≫, 국립한글박물관 소장본
중국어 회화학습서 ≪노걸대≫, ≪박통사≫는 중종 최세진에 의해 최초로 한글로 번역되었습니다. ≪노걸대≫는 중국으로 물건을 팔러 가는 고려 상인이 도중에 중국 상인을 만나서 동행하면서 여행에서 주고받는 이야기를 적어 놓았습니다. ≪박통사≫는 주로 원나라 대도(지금의 북경)에서의 생활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고급 회화서입니다. 아래 대화는 원본 ≪노걸대≫ 제6장에 수록된 내용입니다.
◎ 제97화 인삼을 팔다
6. 외국어 교재를 직접 보고 싶은데 한글박물관에 가면 볼 수 있을까요?
네. 국립한글박물관 2층 상설전시실에서 ≪중간노걸대 언해≫, ≪몽어유해≫, ≪인어대방≫ 유물을 보실 수 있습니다. 1층 한글도서관에서 ≪첩해신어≫ 유물 복제본을 열람하실 수 있으며 디지털 한글박물관(http://archives.hangeul.go.kr)에서는 원문서비스를 통해 관련 이미지를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참고 자료
이한우, 『조선을 통하다』 (21세기북스, 2013)
이상각,『조선역관열전』 (서해문집, 2011)
정광, 『역주 원본노걸대』 (박문사, 2010)
정광, 『조선시대의 외국어 교육』(김영사, 2014)
국립한글박물관, 『한글이 걸어온 길』 (국립한글박물관, 2015)
EBS, 『역사채널e - 조선의 공붓벌레 사역원 역관』 (EBS, 2012)
MBC, 『한국사 傳 – 역관 홍순언』 (MBC,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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