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영자전(韓英字典)』 이야기
서양인의 눈으로 엮은 한국어 사전
— 『한영자전(韓英字典)』 이야기
“A KOREAN-ENGLISH DICTIONARY”, 한영ᄌᆞ뎐
1897년, 일본 요코하마 Kelly & Walsh 출판사에서 한 권의 특별한 사전이 세상에 나왔습니다. 바로 『한영자전(韓英字典)』입니다. 서양인의 한국어 학습과 번역을 위해 편찬된 이 사전은, 선교사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이 이창직(李昌稙), 이원모(李源謨) 등 한국인 조사(助士)들과 프랑스 선교사들의 『한불ᄌᆞ뎐』(1880), 언더우드의 『한영영한ᄌᆞ뎐』(1890)등을 참고하여 편찬한 사전입니다.
선교사 게일: 조선과 한국어에 대한 사랑
선교사이며 탁월한 언어학자였던 게일은 1863년 캐나다 온타리오에서 태어났습니다.
1888년 토론토 대학을 졸업한 후, 기독청년회 지원을 받아 한국에 선교사로 파견되었습니다.
그는 황해도 해주와 경상도 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하며 학당에서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십여 년 간의 한국생활 동안 조선말과 문학, 조선의 문화에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던 그는 조선말을 사랑했던 이방인이었습니다.
『한영자전』의 초판본은 그가 한국에 머물고 있던 10년 동안의 연구와 노력의 결실로 나온 책이었습니다.
사전을 만드는 작업은 단순한 번역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를 이해하고 재구성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한국어의 사전을 편찬하는 데 있어 가장 어려웠던 점을 사전의 서문에 아래와 같이 고백하였습니다.
“또 다른 좌절은 구어(口語, colloquial)로 발음되는 소리와 철자법 사이에 차이가 있다.
구어를 따르는 식으로 사전을 만들자고 말하기는 매우 쉽지만, 이런 방향으로 갈지라도 셀 수 없는 난관들이 존재한다.”*, “판단하고 싶지 않으나 판단해야 하는 문제들을 제공해주었다.”** 이렇듯 실제 발음과 표기법의 차이로 인해 사전 편찬에 많은 어려움이 있음을 회고하였습니다.
* 황호덕. 이상편 역(2012)
** 이준환, 근대 전환기 국한문체의 형성과 자전, 사전, 학습서의 편찬, 2019.12.(배당말학회, 65집)
한영사전의 세 가지 판본
『한영자전』은 세 번에 걸쳐 출간되었습니다. 1897년의 출판된 초판은 한영사전과 중영사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어 1911년에 초판본을 수정하고 보완한 재판이 출간되었으며, 중영사전이 삭제되고 많은 새로운 단어가 추가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931년에는 재판을 수정 보완하여 『한영대사전』이라는 이름으로 삼판이 출간되었습니다. 재판에 수록된 인명·지명관련 올림말은 삭제하고 각종 문헌에 실린 35,000여 개의 새로운 낱말을 포함한 총 75,000여 개의 낱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1897년 『한영자전』 초판-외국인이 만든 한국어-영어사전
『한영자전』은 낱말 약 35,000개를 수록한 방대한 사전으로, 조선어 어휘에 영어 뜻을 붙였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 사전이 단순히 어휘만 나열한 것이 아니라, 낱말마다 한자의 훈, 모음의 장단, 숙어, 반대어, 출전 동사활용, 방안, 동의어, 존칭어 등 지금까지 다른 사전에 없었던 내용을 담았습니다.*
당시 사용되고 있던 한국어의 구어와 문어에 녹아들어 있는 한문의 흔적들을 충실히 반영하여 사전을 만들었습니다.
단어의 배열차례는 『한불ᄌᆞ뎐』의 “아a, 야ya, ᄋᆞa” 등의 알파벳 순서를 따랐으며 아래 예와 같이 표기하고 설명하였습니다.
‘ℓ’은 첫음절이 긴소리임을 ‘s’는 첫음절이 짧은소리임을 표시
단순한 뜻풀이 외에 간략한 설명도 추가하여 학습용 사전을 넘어 조선 사회를 서양에 소개하고자 하였습니다.
* 사전의 재발견, 국립한글박물관, 2018.
1911년 재판-더 정교해진 언어의 지도
게일은 『한영자전』 초판 이후에도 꾸준히 한국어 연구를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1911년, 보다 보완된 두 번째 판본으로 재판을 출간합니다.
재판은 초판보다 더욱 체계적이고 정확해졌으며 올림말의 배열 순서를 한글 자모순(ㄱ~ㅎ)으로 바꾸고, 인명 지명 등 10,000여 개의 올림말을 추가하였습니다.
특히 한글 표기 외에도 한자 병기를 유지해, 한글이 익숙하지 않은 당시 외국인 학습자들에게 실용성을 높였습니다.
또한 발음 기호가 정리되고, 예문이 추가되면서 실제 의사소통에 유용한 실용 사전으로 발전합니다. 이로 인해 재판은 이후 서양 학자들과 선교사들의 대표적인 한국어 사전이 되었습니다.
1931년 삼판-사전 편찬의 결정판
1931년 게일은 『한영대자전』이라는 제목으로 세 번째 판본을 간행합니다. 총 1,79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으로 무려 82,000개 이상의 단어를 수록하였습니다. 1923년의 일본 관동대지진으로 원판이 없어져 다시 게일 등 여러 사람들의 노력으로 1931년에 경성 조선야소교서회에서 출판하였습니다. 이 사전은 1945년 이전에 출판된 한국어 대역사전 중에서 낱말 수집과 정리가 가장 체계적인 사전으로 꼽힙니다.
왜 사전을 만들었을까?-조선 말기 사회와 외국인의 시선
1890년대는 조선 말기,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외국인 선교사, 외교관, 학자들이 조선 땅에 하나둘 발을 들이던 시기였죠.
언어는 그들에게 조선을 이해하는 가장 큰 관문이었습니다.
게일은 그 시대 외국인들 가운데서도 특별했습니다.
그는 조선을 단지 선교의 대상이 아닌, 하나의 문명으로 받아들였고, 조선 사람들과 그 언어를 진심으로 이해하려 했습니다.
그는 한글을 ‘세계에서 가장 과학적인 문자’라 극찬했고, 고전 문학 번역에도 힘썼습니다. 실제로 『구운몽』, 『홍길동전』 등을 영어로 번역해 서양 세계에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합니다.
그의 『한영자전』은 단순한 사전이 아닙니다.
그것은 19세기 말 조선을 향한 진심 어린 애정의 기록이자,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세상에 알리고자 했던 서양인의 마음이 담긴 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