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공감
소장품 이야기

조선 시대 말(馬)의 질병 치료법에 대한 기록;
『마경초(馬經抄)』

‘마경초’ 사진이다. 길게 이어진 두루마리 형태의 종이가 펼쳐져 있고,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말의 모습을 그린 삽화가 반복해서 등장한다.

2026년 '붉은 말의 해'를 맞이하여

2026년 병오년(丙午年, year of Fire Horse)은 ‘붉은 말의 해’로, ‘병(丙)’은 태양, 불(火), 붉은색을 ‘오(午)’는 12간지 중 7번째 동물인 말(馬)을 뜻한다. 특히 붉은 말은 영원불멸, 강인함, 생명력, 벽사 등의 상징적 의미가 있으며,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우의 적토마(赤免馬)’가 명마의 상징성을 갖는 것 역시 이러한 의미와 관련 있다고 할 수 있다.

말은 강력한 왕권을 상징하기도 한다. 수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중원을 평정했던 당 태종 이세민과 함께했던 육준마(六駿馬)에 비견하여, 조선을 창업한 태조 이성계에게는 팔준마(八駿馬)가 있었다. 현전하는 <팔준도첩(八駿圖帖)>에는 여덟 마리 말의 명칭, 털의 색, 산지, 특징, 활약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이 중에서 붉은 털을 가진 발전자(發電赭)는 번개와 같이 빠르고, 용등자(龍騰紫)는 왜적을 평정할 때 탔다고 전한다.
‘하늘이 태조 이성계와 같은 용기와 지혜 가진 이를 내리시어 나라의 편안을 위하시매, 강성한 여덟 준마가 때를 맞추어 나니 태조의 준마 여덟 마리 이름은, 황운골•유린청•추풍오•발전자•용등자•응상백•사자황•현표 등이다.(용비어천가 권8 70장)’이 적혀있다.
‘팔준도첩’에 있는 몸을 비틀어 뒤를 돌아보는 자세의 말 그림이다.
‘팔준도첩’에 있는 곧게 서 있는 말의 옆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 작자미상, <팔준도첩> 중 발전자, 용등자, 국립중앙박물관

‘하늘이 태조 이성계와 같은 용기와 지혜 가진 이를 내리시어 나라의 편안을 위하시매, 강성한 여덟 준마가 때를 맞추어 나니 태조의 준마 여덟 마리 이름은, 황운골•유린청•추풍오•발전자•용등자•응상백•사자황•현표 등이다.(용비어천가 권8 70장)’이 적혀있다.
‘팔준도첩’에 있는 몸을 비틀어 뒤를 돌아보는 자세의 말 그림이다.
‘팔준도첩’에 있는 곧게 서 있는 말의 옆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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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하마(果下馬)’에서 천연기념물 ‘제주마’까지 이어진 역사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말(馬)은 하늘과 인간을 이어주고, 인간의 영혼을 수호하는 신성하고 영험한 존재로 여겨왔으며, 신화와 고전, 회화, 조각 등에서 페가수스(Pegasus), 유니콘(unicorn), 천마(天馬) 등의 상징적으로 존재로 표현되었다. 말을 길들이고 사육하는 것이 가능해진 이후에는 우리 삶과 생활에 밀접한 관계로 무거운 짐을 나르고 빠른 이동을 위한 운반과 운송, 교통의 중요한 수단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고기는 식용으로 가죽과 갈기와 꼬리는 신발, 갓 등의 재료로 소용되었다.

우리나라의 말에 대한 역사는 구석기 시대 상원 검은모루동굴의 유적에서부터 확인되며, 동예는 ‘과하마(果下馬; 과실수 아래 말, 키가 작고 아담한 말)’라는 토종말을 특산품으로 생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고구려 무용총의 수렵도와 쌍영총의 기마인물도 등의 고분벽화를 보면 삼국시대 이미 기마 문화가 정착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시대에는 왕의 말과 마차, 말의 운영과 관리 등을 담당하는 태복시(太僕寺)를 설치하고, 제주도 ‘탐라목장’을 비롯하여 전국에 160여 개의 국영 목장을 운영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조선 시대 역시 전국에 국영목장을 설치하고 관리하는데, 제주도의 경우 한라산을 중심으로 10여 개의 국마장이 운영되었고, 15세기에는 국가에서 생산하는 말의 절반 이상인 26,000여 필을 제주도 목장에서 관리하였다는 통계가 있다.

제주도는 넓은 초지와 온화한 기후 등 말을 기르기 적합한 환경을 갖추고 있어 통일신라 이전부터 말산지 중 한 곳이었다. 오늘날 ‘제주말’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고, ‘사람이 태어나면 서울로, 말이 태어나면 제주도로 보내라’ 라는 속담에서도 볼 수 있듯이 제주도와 말의 역사는 매우 깊다고 할 수 있다.

전국적인 국영목장은 임진왜란 이후 쇠퇴하기 시작하였고, 1905년 을사늑약 이후 일제에 의해 대부분 폐장되고, 마을 공동체 단위의 공동목장으로 운영되며 근대적 목축 경영의 형태로 전환된다.

오늘날 광진구 화양동 근처는 세종대부터 운영되었던 ‘살곶이 목장’이 있던 곳이다. 살곶이 목장의 군마들을 관리하고 시찰하기 위해 만든 것이 ‘화양정’을 두었다. 화양동이라는 명칭은 바로 이 화양정에서 유래된 것이며, 이처럼 말과 관련된 지명이나 명칭은 말죽거리, 마들, 피맛골, 마산, 용마산, 천마산, 마식령, 마이산 백마강, 백마고지 등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사람의 치료에는 『동의보감(東醫寶鑑)』, 말의 치료에는 『마경초(馬經秒)』

조선 시대 국방과 운송, 교역 등에 있어 국가와 민간을 막론하고 말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만큼, 우수한 말 생산, 안정적인 개체수 유지, 건강과 질병, 국영 목장 운영 등은 고려시대 태복시에 이어 사복시(司僕寺)가 전담하여 체계적으로 관리하였다. 이러한 노력에도 전란과 전염병이 있을 때는 말의 관리에 큰 어려움이 있었다.
말의 전염병이 크게 번져 사복시의 말 50여 필이 죽었다. (1668년)
馬疫熾盛, 太僕馬致斃者五十餘匹。(顯宗改修實錄 十九卷 顯宗九年九月二十一日 丁巳)

함경도 각 고을에서 말과 소에게 돌림병이 크게 번져 개 돼지까지도 전염되어 죽었다. (1671년)
咸鏡道各邑牛馬疫大熾, 以至狗彘, 亦皆延染致斃。(顯宗實錄 十九卷 顯宗十二年五月十六日 丙寅)
위의 기록은 17세기 현종대 전염병으로 인해 말과 가축들의 많은 수가 폐사했다는 내용이다. 마역(馬疫)은 말이 집단으로 폐사하는 등 치명적인 피해가 있으므로 이러한 전염병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마의(馬醫), 마의학(馬醫學)이 필요했다.

또한 1624년 이괄의 난과 1627년 정묘호란을 거치면서는 강력한 기마병 양성의 시급성이 부각되었다. 당시 국영 목장 관리를 담당했던 사복시 제조관 이서(李曙, 1580~1637)는 이 과정에서 말의 관리에 참고하는 기존의 마의서(馬醫書)들이 한문으로 되어 있고, 그 내용이 방대하여 실용성이 떨어지는 한계를 알게 되었다. 이에 말의 관리에 관여하는 전문가, 관료층을 비롯하여 마부와 하급직까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쉽게 읽고 참고할 수 있도록 내용을 추려 한문에 한글 구결과 언해를 첨부한 『마경초집언해(馬經抄集諺解)』를 편찬하였다.

언제 어디서나 누구나 보기 쉽게;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마경초(馬經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마경초(馬經抄)』는 19세기 편찬된 것으로 17세기 이서의 『마경초집언해』를 요약한 것이다. 표제는 ‘마의방(馬醫方)’이며, 권수제(책의 첫장 제목)은 ‘마경초(馬經抄)’로 기록되어 있다. 초(秒)나 방(方)은 베낀다는 뜻으로, 기존의 ‘마경’이나 ‘마의’를 참고하였다는 의미이다. 형태는 아코디언식으로 접는 첩으로 장황되었고, 크기가 작은 수진본(袖珍本)이다. 한자 수(袖)는 ‘옷소매’를 뜻한다, 즉 ‘옷소매에 넣고 다닐 만큼 작은 크기'라는 의미로 일명 ‘좁쌀책’이라고도 하였다. 접어서 휴대하기 쉽게 만든 것이다.
이서의 『마경초집언해』를 비롯하여 기존의 마의서들은 방대한 내용에 2책 이상으로 분량이 많아 실제로 현장에 가지고 다니면서 보기에는 쉽지 않았다. 실제 말을 관리하는 데 있어 현장에서 바로 펴볼 수 있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마경초』의 내용은 이서의 『마경초집언해』의 내용 중 필요한 부분만을 골라 한글만으로 구성하였으며, 작은 크기로 휴대하기 편해 현장에서 바로 볼 수 있는 실용적인 성격이 강한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마경초집언해’와 ‘마경초’를 비교한 표 사진이다. ‘마경초집언해’의 저자는 이서이고 제작시기는 17세기이다. 제작방법은 목판인쇄, 장황형태는 冊, 수량은 2책, 크기는 33.7x21.5cm, 한문+한글이 사용되었으며 소장처는 국립중앙박물관 등이다. ‘마경초’의 저자는 미상이고, 제작시기는 19세기이다. 제작방법은 목판인쇄, 장황형태는 折帖, 수량은 1첩, 크기는 12.8x5.9cm, 한글이 사용되었다. 소장처는 국립한글박물관 등이다.
19세기 언해본 『마경초』는 현재 국립한글박물관, 대구교육대학교박물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이 있다. 국립한글박물관본과 대구교대박물관본은 목판본이며 작은 크기의 수진본으로 거의 동일한데, 대구교대본은 절반 이상 낙장된 상태로 전한다. 국립중앙도서관본은 필사본으로 목판본과 내용이 거의 유사하다. 그런데 한글 표기에서 목판본보다 구개음화와 원순모음화가 더 많이 반영되어 후대의 언어학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고, 1855년(咸農5年)의 연대와 1933년(昭和8年) 조선총독부 관인이 있다. 그러므로 목판본은 19세기 초중반, 필사본은 19세기 후반으로 제작 시기의 유추가 가능하다.
‘마경초’의 소장처 별 특이 사항이 표로 정리되어 있다.

좋은 말상(相)과 말의 병증별 치료법

『마경초』에는 좋은 말과 나쁜 말의 상(相), 말의 수명, 이(齒)를 보고 나이를 가늠하는 법, 증세와 질병에 따른 치료법, 말의 혈자리 등을 표시한 2면의 그림과 목차가 수록되어 있다. 첫 번째 내용은 좋은 말과 나쁜 말의 관상 보는 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이는 공자가 이야기한 유익한 벗과 해로운 벗의 구분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또한 벗을 세 가지 유형으로 나눈 것은 여윈 말 세 종류, 세 가지 병, 세 가지 위태함, 세 가지 사료 먹이기 등을 기술하는 것 역시 세 가지 벗의 유형을 논의하는 방법과 매우 유사한 논지이다. 좋은 말상의 기록은 이목구비는 물론, 눈동자, 터럭, 몸체의 부분마다 은유적 표현과 자세한 설명으로 묘사하고 있다.
‘좋은 말상 : 머리는 높고 낯은 껍질 벗긴 토끼 같고, 눈은 드리운 방울 같고, 눈 아래 살이 있고, 머리뼈는 둥글고, 귀는 대나무 통을 깎은 것 같고, 볼때기는 너르고, 코는 크게 너르며, 윗 입술은 네모나고, 입어귀는 깊고, 아랫 입술은 둥글고, 볼때기 뼈는 둥글고, 목은 길되 어위굽고, 갈기는 엷고 보드라우며 가늘고, 앞으로 보면 우는 닭 같고, 가슴은 평평하고........눈망울에 오채가 나면 장수하고, 눈이 크면 염통이 커서 용맹하여 놀라지 아니하고, 귀가 작으면 간이 작아 사람의 뜻을 알고, 노루의 머리에 사슴의 귀 같으면 이름을 추풍이라 하고, 귀 털이 길이가 한 자이면 값이 천금에 값하고.......뒤 발톱이 양의 코 및 수염과 닭의 며느리발톱 같으면 하루 천리를 가고, 뿔이 둘이 나면 이름을 용의 새끼라 하고, 처음에 나서 몸에 털이 없으면, 이것이 이른바 용의 종자이고, 눈동자가 둘 있으면 좋다.’가 적혀있다.
‘묘흔 ᄆᆞᆯ샹’이라고 적힌 목차 사진이다.

▲ 목차 중 ‘묘흔 ᄆᆞᆯ샹’

‘죠흔 ᄆᆞᆯ샹’이라고 적힌 본문 사진이다.

▲ 본문 중 ‘죠흔 ᄆᆞᆯ샹’

※ 본문과 목차의 ‘좋은 말상’의 표기가 차이가 있는데 이는 목차 부분이 오기된 것으로 보인다.

‘좋은 말상 : 머리는 높고 낯은 껍질 벗긴 토끼 같고, 눈은 드리운 방울 같고, 눈 아래 살이 있고, 머리뼈는 둥글고, 귀는 대나무 통을 깎은 것 같고, 볼때기는 너르고, 코는 크게 너르며, 윗 입술은 네모나고, 입어귀는 깊고, 아랫 입술은 둥글고, 볼때기 뼈는 둥글고, 목은 길되 어위굽고, 갈기는 엷고 보드라우며 가늘고, 앞으로 보면 우는 닭 같고, 가슴은 평평하고........눈망울에 오채가 나면 장수하고, 눈이 크면 염통이 커서 용맹하여 놀라지 아니하고, 귀가 작으면 간이 작아 사람의 뜻을 알고, 노루의 머리에 사슴의 귀 같으면 이름을 추풍이라 하고, 귀 털이 길이가 한 자이면 값이 천금에 값하고.......뒤 발톱이 양의 코 및 수염과 닭의 며느리발톱 같으면 하루 천리를 가고, 뿔이 둘이 나면 이름을 용의 새끼라 하고, 처음에 나서 몸에 털이 없으면, 이것이 이른바 용의 종자이고, 눈동자가 둘 있으면 좋다.’가 적혀있다.
‘묘흔 ᄆᆞᆯ샹’이라고 적힌 목차 사진이다.
‘죠흔 ᄆᆞᆯ샹’이라고 적힌 본문 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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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증의 경우 기본적으로 말의 오장육부가 사람과 유사하다는 인식하에 진단하고 있다. 치료의 핵심은 열을 내리고 염증을 없애고, 독을 푸는 것이다. 마역(馬疫)의 경우 주로 고열과 염증을 동반하므로 차가운 성질의 약재를 많이 사용하였다. 약재 중에서 대황(大黃)은 몸의 뜨거운 열기를 대변으로 배출시키는 역할을 하고, 감초(甘草)는 여러 약재의 독성을 조화롭게 하며, 기력을 보충하는 기초 약재로 쓰였다. 황련(黃連)과 황금(黃芩)은 염증과 독기를 제거하는 항생제로, 석고(席藁)는 해열제로 사용되었으며, 때로 곰의 쓸개나 우황(牛黃) 등의 동물성 약재나, 참기름에 물을 섞은 것이나, 어린아이의 오줌을 약재로 사용한 경우도 있다. 마지막에는 침치료를 위해 말의 혈자리를 표시한 삽화가 실려있는데, 『마경초언해』에서 80여 곳의 혈자리를 표시한 것과 비교하여 22곳의 핵심 혈자리만 표시하여 수록하였다.
‘마경초’ 중 ‘혈(穴)’ 그림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말의 몸을 그린 선 그림과 함께 수많은 선과 글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 『마경초』 ‘혈(穴)’ 그림

‘마경초집언해’ 중 ‘혈명지도(穴名之圖)’ 그림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말의 몸을 그린 선 그림과 함께 수많은 선과 글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 『마경초집언해』 ‘혈명지도(穴名之圖)’ 그림

‘마경초’ 중 ‘혈(穴)’ 그림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말의 몸을 그린 선 그림과 함께 수많은 선과 글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마경초집언해’ 중 ‘혈명지도(穴名之圖)’ 그림이다. 누렇게 바랜 종이 위에 말의 몸을 그린 선 그림과 함께 수많은 선과 글자가 촘촘히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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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경초』에서 볼 수 있는 한글 표기의 특징은 먼저 초성에는 된소리 표기에서 ‘ㄱ’, ‘ㄷ’, ‘ㅂ’, 계가 ‘ㅅ’계로 단일화된다. 종성에서는 ‘ㄷ’이 소멸하여 ‘ㅅ’으로 교체되고, 연철과 분철에서도 대체로 분철표기가 대세로 표기되었다. 음운면에서는 ㄷ구개음화를 거친 시기이지만 실제로 이전의 형태가 많이 남아 있다. 문법적 특징은 주격 조사 ‘가’가 등장하며, 목적격 조사로는 ‘ᄅᆞᆯ'과 ‘을’이 주로 쓰이며, 처격조사에서도 ‘의’가 일방적으로 쓰인다. 이러한 국어학적 특징은 동시기 편찬된 『백병구급방(百病救急方)』, 『구급신방(救急新方)』 등의 한글 표기와도 유사점이 많다.
‘깃츰’이라고 적힌 목차 사진이다.

▲ 목차 중 ‘깃츰’

목차에 보이는 ‘깃츰’은 오늘날 ‘기침’으로 본문에서는 ‘깃ᄎᆞᆷ’으로 혼용하여 쓰이기도 했다. 기침은 15~16세기에는 ‘기춤’, ‘기츰’으로, 16세기 말~18세기 말에는 ‘기ᄎᆞᆷ’으로 표기되었다. 19세기에는 ‘기ᄎᆞᆷ’으로 표기되는데, 이에 대한 변형으로 『마경초』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깃츰’ 등의 용례도 있다. 기침의 표기는 19세기 말부터 정착되었다.
이처럼 『마경초』는 한글의 과도기적 표기를 담고 있어, 조선 후기 한글 사용 양상을 연구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또한 한글 언해본이라는 것과 휴대하기 편하게 만든 수진본이라는 형태는 ‘수의학’이라는 전문 분야의 지식을 실용적으로 보급하는데 있어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 작성 : 이진희 학예연구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