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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장품 이야기. 흰색 배경에 이태준의 ‘문장강화’ 소장품이 놓여있다. 책 표지는 연한 갈색빛을 띠며 세월의 흔적이 느껴진다. 표지 왼쪽 위에는 ‘문장강화’가 한자로 쓰여있다. 왼쪽 하단에는 하늘색 박스 안에 ‘소장품 이야기’ 문구가 적혀있다. 그 아래에는 기사의 제목 ‘글쓰기의 믿을 구석 이태준, 『문장강화』(1947)’가 쓰여있다.
소장품 이야기
글쓰기의 ‘믿을 구석’
이태준, 『문장강화』(1947)
소장품 이야기

글쓰기의 ‘믿을 구석’
이태준, 『문장강화』(1947)

모두가 글을 쓰고 싶어 하지만 누구나 글을 쓰지는 못합니다. 글쓰기란 본래 생각을 정교하게 벼려내는 지난한 단련이기 때문입니다. 디지털 전환 시대, 오히려 글쓰기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이미지보다 텍스트의 명료함이 더 절실해졌고, 자신을 지적으로 차별화하고 개성을 표현하려는 욕구가 독서와 글쓰기를 ‘힙’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막막한 텍스트의 부유 속에서, 글쓰기의 기준이 되는 ‘믿을 구석’을 찾게 됩니다.

1. 처음 글쓰는 이들을 위하야-글쓰기 기술의 고전

‘문장강화’ 표지 사진이다. 책 표지는 연한 갈색빛을 띠며, 왼쪽 위에는 ‘문장강화’가 한자로 쓰여있다. ▲ 표지 『문장강화』,1947
이태준의 『문장강화』(1947)는 일제강점기에 독자적이고 체계적인 조선어 문장론을 제시한 글쓰기 교본의 고전(古典)입니다. 당시 글쓰기는 특별한 기술을 지닌 작가들의 몫이었고, 문장 작법 교본들은 대부분 일본 서적을 번역한 수준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태준은 조선어의 특성과 한국 문학의 미학에 기반한 독자적인 문장론을 정립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강사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지점을 직접 확인하고,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조선어 글쓰기’ 교육의 필요성과 좋은 문장의 기준과 작법에 대한 이론적 정립의 중요성을 느꼈습니다. 특히 조선어 과목이 사라짐으로써 우리말 감각을 상실하게 될 다수의 중학 이상의 학생들을 염두에 둔 『문장강화』는 작문을 통해 문학을 이야기하고, 문학을 정리하고, 조선어의 운명을 대비한 시대적 기록이었습니다.

2.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

이태준(李泰俊, 1904년생 본명 이규태, 호는 상허尙虛)은 휘문고등보통학교와 도쿄 조치(上智)대학에서 수학했습니다. 일찍 『오몽녀』(1925)로 등단한 후, 1930년대에 왕성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많은 독자를 가진 작가였습니다. 당시 조선의 작가들은 문예 활동만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워 언론사나 교육기관에 근무하면서 창작 활동을 병행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태준 또한 개벽사, 신생사, 중외일보사 기자와 조선중앙일보사 학예부장으로 근무하고, 잡지 편집과 이화여자전문대학교, 경성보육학교에서 조선어 작문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강의 경험은 조선어 작문 교육의 중요성과 조선어 문장 역사에 대해 의식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조선어학회의 조선어 표준어 사정위원회 위원이자, 잡지 『어린이』에 작품을 다수 발표한 아동문학가이기도 합니다. 1933년 이효석, 이상, 박태원 등과 함께 구인회를 조직하고, 문예지 「문장」의 창간을 주관했습니다. 주요 작품으로는 「달밤」, 「복덕방」, 「돌다리」, 「해방전후」 등의 단편소설과 『황진이』, 『농토』 등의 장편소설, 『무서록(無序錄)』 수필집 등이 있습니다. 1946년에 월북한 후 북한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다 숙청되어 정확한 사망 시기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이태준은 문장(文章)의 대가로 간결하고 정제된 문장으로 유명하여 “시에는 정지용, 문장에는 이태준”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시인 정지용은 그의 『지용문장독본』의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남들이 시인시인 하는 말이 너는 못난이 못난이 하는 소리같이 좋지 않았다.
나도 산문을 쓰면 쓴다 … 태준(泰俊)만치 쓰면 쓴다고 변명으로
산문 쓰기 연습으로 시험한 것이 책으로 한 권은 된다.”

3. 내 것을 쓰자

『문장강화』는 잡지 『중앙』(「글 짓는 법」, 1934.6.~1935.1. 8회)과 『문장』(「문장강화」, 1939.2.~1939.10. 10회)에 연재한 내용을 엮어 출간되었습니다.
총 아홉 강으로 구성되어 문장 작법의 의의와 언어 문제, 운문과 산문, 각종 문장의 요령, 퇴고, 표현 방식, 각종 문체, 문장의 역사 등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특히 근대 작문의 계보와 근대 한국어의 형성 과정에 초점을 맞춘 연구에서도 주목을 받았습니다. 해방 후에는 『문장강화』를 바탕으로 『증정 문장강화』와 『신문장강화』를 펴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문장과 문장 작법을 꾸준히 추구했습니다.
그는 기존의 형식화되고 관념적인 문어체(文語體)에서 벗어나, 현실의 감각과 조화를 이루는 새 시대의 문장을 제시할 필요성을 느껴 새로운 문장 작법을 제안하고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시했습니다.

“글은 아무리 소품이든 대작이든, 마치 개미면 개미, 호랑이면 호랑이처럼, 머리가 있고 몸이 있고
꼬리가 있는, 일종의 생명체이길 요구하는 것이다. 한 구절, 한 부분이 아니라 전체적인, 생명체적인
글에서는, 전체적이요 생명체적인 것이 되기 위해 말에서보다 더 설계하고 더 선택하고
더 조직·개발·통제하는 공부와 기술이 필요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필요한 공부와 기술을 곧 ‘문장작법文章作法’ 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문장강화』 「문장작법의 새 의의」 중에서

‘문장강화’ 목차 사진이다. 책을 펼친 상태로, 오른쪽 페이지에는 세로로 인쇄된 한자 목록이 정리되어 있다.▲ 목차

‘문장강화’ 제1장 문장작법의새 의의 사진이다. 본문 일부로 책의 가운데 부분이 펼쳐져 있다.▲ 제1장 문장작법의새 의의

첫째, 글쓴이 개인의 감각과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나는 문체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글쓰기를 활자를 조작하는 행위가 아닌, 마음에서 가장 가까운 ‘말’을 짓는 행위로 보고 “개인적인 감정, 개인적인 사상의 교환을 현대인처럼 절실히 요구하는 시대는 일찍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글쓴이의 됨됨이가 첫마디부터 드러나는 글이 수필이다.
그 사람의 자연관, 인생관, 습성, 취미, 지식, 이상 이런 모든 ‘그 사람의 것’이
직접 재료가 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 수필을 쓰려면 먼저 ‘자기의 풍부’가 있어야 하고,
‘자기의 미(美)’가 있어야 할 것이다.”

『문장강화』 「각종 문장의 요령, 수필」 중에서

둘째, 언어적 요소와 실제적 훈련을 통해 좋은 문장을 만드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단 하나뿐인 적절한 낱말을 찾아 써야 문장이 힘을 얻는다는 조언과 함께 표준어, 방언, 한자어의 사용 문제부터 서간문, 기행문, 논설문, 수필 등 각종 문장 유형별 요령을 구체적인 예문과 함께 제시합니다.

셋째, 퇴고(推敲)를 강조합니다. 흔히 글은 ‘일필휘지’로 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일필에 되는 것은 차라리 우연”이며, “고칠수록 좋아지는 것은 글쓰기의 진리”라고 합니다. 이때 퇴고의 기준은 표현하려는 마음과 가장 가깝도록 고쳐 쓰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있어도 괜찮을 말을 두는 너그러움보다,
없어도 좋을 말을 기어이 찾아내어 없애는 신경질이 글쓰기에선 미덕이 된다. ”

『문장강화』 「퇴고의 이론과 실제」 중에서

4. 『문장강화』와 함께하는 글쓰기 여정

‘문장강화’ 제1장 문장작법이란? 사진이다. 책이 펼쳐진 상태로, 양쪽에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어 적혀있다.▲ 제1장 문장작법이란?

‘문장강화’ 제2장 문장과 언어의 제 문제-방언과 표준어와 문장 사진이다. 책이 펼쳐진 상태로, 양쪽에 한자와 한글이 혼용되어 적혀있다.▲ 제2장 문장과 언어의 제 문제-방언과 표준어와 문장

글이 써지는 시간은 찰나에 불과하지만, 풀리지 않아 고심하는 시간은 길게 이어집니다. 그 시간들이 모이고 모이면 글이 조금씩 생겨납니다. 단어 하나 조사 하나 고민하는 집중의 시간동안 몸과 마음에 새긴 흔적을 발견하는 경험이야말로, 우리가 글쓰기를 계속하는 이유가 아닐까요?
이러한 글쓰기의 여정에 함께하는 지침서 『문장강화』는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 <글(자)감(각): 쓰기와 도구>(2025.11.19.~2026.3.22.)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김은재(전시운영과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