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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사람들은 어디서 책을 빌렸을까?
조선시대 독서 문화 살펴보기

유튜브 영상이나 누리소통망(SNS) 짧은 영상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몇 시간을 훌쩍 넘긴 적 있으신가요? 짧고 강렬한 영상들은 중독성이 강해 자꾸만 보게 되는데요. 18세기 조선시대 사람들에게는 한글 소설이 바로 그런 매력적인 문화 매체였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사람들은 과연 어디서 어떻게 책을 구해 읽었을까요? 4월 23일 세계 책과 저작권의 날을 맞아, 이번 호에서는 조선시대 독서 문화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조선시대 독서 열풍의 중심, 책 대여점 ‘세책점’

현대의 도서관은 누구나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곳으로, 단순히 책을 빌리고 반납하는 공간을 넘어 다목적 문화공간으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조선시대 도서관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오늘날처럼 누구나 드나들 수 있는 도서관은 없었지만, 조선시대에도 책을 수집해 보관하는 공간은 존재했습니다.
‘존경각’ 사진이다. 기와지붕과 붉은 기둥이 특징이며, 낮은 담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 존경각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안동 ‘도산서원’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여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 도산서원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 안동 도산서원 (출처: 국가유산청 국가유산포털)

‘존경각’ 사진이다. 기와지붕과 붉은 기둥이 특징이며, 낮은 담장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안동 ‘도산서원’을 위에서 내려다보고 찍은 사진이다. 여러 채의 한옥이 모여 있는 도산서원 전경이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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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으로 왕실 도서관이자 학술과 정책을 연구하는 기관이었던 ‘규장각’, 성균관 안에 건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대학 도서관 ‘존경각’, 사설 교육기관인 동시에 서적을 수집하고 간행하기도 한 ‘서원’ 그리고 문중의 자제교육과 독서를 장려할 목적으로 세워진 사립도서관 ‘문중문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모두 특정 신분 계층만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요. 그렇다면 일반 서민들은 어떻게 책을 접했을까요?

바로 ‘세책점’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세책점은 돈을 받고 책을 빌려주는 도서 대여점으로, 조선인이 창작한 작품이나 중국 소설을 한글로 번역한 필사본이 인기가 많았습니다. 세책은 담보를 맡기며 책을 빌리고, 돌려줄 때 책값의 1/10 정도를 대여료로 내는 방식이었는데요. 주로 글을 아는 양반가 여성들이 대여했으며, 주발부터 은비녀, 담요 등 다양한 물품을 담보로 책을 빌렸다고 합니다. 상품경제가 발달하고 화폐가 통용되자, 19세기에는 신분과 관계없이 돈 있는 사람이면 여가 생활로 소설을 빌려 읽기 시작했습니다.
『남정팔난긔』 속 낙서 사진이다. 한글로 낙서를 해놨다.
『남정팔난긔』 속 낙서 사진이다. 책에 한글로 낙서를 해놓고, 그림을 그려 놨다.

남정팔난긔 속 낙서 (출처: 국립중앙도서관)

『남정팔난긔』 속 낙서 사진이다. 한글로 낙서를 해놨다.
『남정팔난긔』 속 낙서 사진이다. 책에 한글로 낙서를 해놓고, 그림을 그려 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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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책점의 책은 여러 사람에게 빌려주는 만큼 질 좋은 종이를 사용했습니다. 표지를 삼베 같은 것으로 싸서 두껍게 만들고 책장마다 들기름을 칠해 쉽게 헤지지 않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책을 상하지 않게 하려는 주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독자들은 책에 낙서나 욕설을 남겼는데요. 대여료가 비싸다는 불평, 잘못된 글자를 보수하라는 지적, 저속한 그림과 거친 말까지. 익명에 기대어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는 모습이 오늘날의 온라인 댓글 문화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조선의 책 전문가들, ‘책쾌’와 ‘전기수’

김홍도 ‘담배썰기’ 작품 사진이다. 넓은 담뱃잎의 뼈다귀를 추려낸 다음 작두판에 눌러서 썰어내고 있는 광경을 그린 것이다. 왼쪽 아래에는 ‘전기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한 손에는 부채를 들고, 한 손으로는 펼친 책을 잡으며 읽고 있다.

▲ 김홍도 담배썰기,
《단원 풍속도첩》 좌측 하단에 전기수로
추정되는 인물이 있다. (출처: 국립중앙박물관)

서점이 없던 시절, 책의 매매를 중개하는 일을 생업으로 삼던 사람을 ‘책쾌’라고 했습니다. 책쾌는 고객의 집을 직접 찾아다니며 책을 사고팔았습니다. 이들은 단순한 책 장수가 아니라 글을 깨치고 교양과 지식을 두루 갖춘 책의 전문인이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는 책이라면 희귀본은 물론 금서까지 구해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는데요. 책쾌로 이름을 날린 ‘조신선’은 책 제목만 대면 저자, 권수와 같은 서지정보는 물론, 누가 책을 얼마나 소장하고 있었는지까지 줄줄 읊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한편 조선 후기에는 소설을 전문적으로 읽어주던 낭독자 ‘전기수’가 등장했습니다. 주로 글을 모르거나 책이 비싸서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전기수를 찾았는데요. 세책점이 서울에 집중되어 있던 것과 달리, 이들은 전국을 누비며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았습니다.

또한 능력이 뛰어난 이는 부잣집에 초청받기도 했는데요. 규방에 출입하기 위해 여장하거나 방물장수 행세를 하는 등 자신을 찾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는 열정을 보였다고 합니다. 당시 전기수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작품은 한 번에 읽기 편한 춘향전, 임경업전, 심청전 등으로, 이들의 맛깔나는 낭독은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으며 한글 소설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했습니다.

싸고, 가볍고, 재미있다! 한글을 퍼뜨린 ‘딱지본’

『춘향전』 (딱지본, 1978년 추정) 표지 사진이다. 밝은 노란 배경 속에 춘향과 이몽룡이 크게 그려져 있으며, 그 주위에는 나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춘향전』 (딱지본, 1978년 추정) 본문 사진이다. 책을 펼친 모습으로,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세로쓰기 글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다.

춘향전 (딱지본, 1978년 추정),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춘향전』 (딱지본, 1978년 추정) 표지 사진이다. 밝은 노란 배경 속에 춘향과 이몽룡이 크게 그려져 있으며, 그 주위에는 나비 등으로 장식되어 있다.
『춘향전』 (딱지본, 1978년 추정) 본문 사진이다. 책을 펼친 모습으로, 누렇게 변색된 종이에 세로쓰기 글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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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점기에 한글이 전파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딱지본’ 소설입니다. 딱지본은 신식 활판 인쇄기로 찍어낸 국문 소설로, 일반 책보다 작은 크기에 울긋불긋 화려한 표지가 마치 딱지처럼 생겨 붙여진 이름입니다. 가격이 싸서 ‘육전 소설’이라고도 했는데요. 6전은 당시 시장에서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는 값이었습니다. 휴대가 간편하고 부담 없는 가격 덕분에 신분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에게 읽히며, 한글 전파에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익숙한 표기 방식인 띄어쓰기, 한자 병기, 대화자 표기는 딱지본 때문에 일반화되고 안착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전통적인 민화와 서구적 회화 기법을 결합한 표지 그림을 통해 그림과 문자가 한 권의 책 안에서 본격적으로 만나게 됐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림이 들어간 책 표지가 당연하게 느껴지는데, 그 시작이 바로 딱지본이었던 셈입니다.

책에 자꾸 손이 가게 만드는 조선시대 독서 용품

서산 사진이다. 푸른색 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앞면에 10여 개의 구멍이 있고, 금박으로 나비가 장식되어 있다.

▲ 서산, 전주대 소장

책갑 사진이다. 정방형의 판 두 개를 끈으로 묶은 형태이며,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덧대어 보강하고, 끈을 연결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었다.

▲ 책갑,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책궤 사진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직사각형 책장이며, 들어서 떼어내는 세로로 긴 두 개의 문이 있다.

▲ 책궤,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서산 사진이다. 푸른색 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앞면에 10여 개의 구멍이 있고, 금박으로 나비가 장식되어 있다.
책갑 사진이다. 정방형의 판 두 개를 끈으로 묶은 형태이며,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덧대어 보강하고, 끈을 연결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었다.
책궤 사진이다. 오동나무로 만든 직사각형 책장이며, 들어서 떼어내는 세로로 긴 두 개의 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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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들어 독서대, 집게형 조명, 인덱스 스티커 등 편리한 독서를 돕는 독서 용품이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사람들도 효율적인 독서를 돕는 다양한 도구를 사용했는데요. 그중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서산’입니다. 서산은 글 읽을 횟수를 세는 데 사용한 도구입니다. 보통 긴 사각형 모양의 종이 앞면에 10여 개의 구멍을 뚫어 놓았는데, 당시 사람들은 이를 접었다 폈다 하며 책 읽은 횟수를 기록했습니다. 종이 표면에 문양이나 한자 등을 새겨 화려하게 장식하기도 했는데, 예쁘게 꾸민 서산은 책갈피로도 활용됐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은 책 보호와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도구로 책커버를 애용하고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책커버로 불릴 수 있는 ‘책갑’은 책의 겉장이 상하지 않게 덧씌우는 것으로 ‘책가위’, ‘책가의’, ‘책의’로도 불립니다. 정방형의 판 두 개를 끈으로 묶은 형태이며, 가장자리는 대나무를 덧대어 보강하고, 끈을 연결할 수 있도록 구멍을 뚫어 책을 안전하게 보관했습니다.

오늘날의 책꽂이와 같은 ‘책궤’는 책을 보관하는 가구입니다. 종이에 벌레가 생기지 않도록 병충에 강한 오동나무 판재로 제작했으며, 칸막이가 나뉜 구조 덕분에 ‘논어’, ‘맹자’ 등 여러 권이 한 질로 된 책들을 정리하고 보관하기 좋았습니다. 문판은 위로 밀어 올리는 미닫이문과 들어서 떼어내는 두껍닫이문 형식이 있는데, 책을 여러 권 쌓아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던 만큼 주로 두껍닫이문 형식이 많이 쓰였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조선시대의 독서 문화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책을 읽고 즐기는 방식이 오늘날 우리와 많이 다른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비슷한 점도 많은데요. 인기 많은 책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고, 책을 읽은 뒤 감상을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것 같습니다. 책을 향한 조상들의 뜨거운 열정을 떠올리며, 오늘 한 권의 책을 펼쳐보시는 건 어떨까요?

<취재 : 인포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