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적 미감을 담은 그림
올림픽 무대에서 빛나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저는 한국적인 일러스트를 작업하는 일러스트레이터 광광입니다.
‘광광’은 제 이름 ‘오세광‘의 ‘광’자를 사용한 예명으로, ‘바를 광(匡)’자와 ‘빛 광(光)’자를 합쳐 ‘바르게 빛난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한국의 전통과 문화를 그려내는 개인 일러스트 프로젝트 ‘KOREAN DREAM : 한국의 꿈’과 ‘FREEDOM : 자유로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밀라노 올림픽에서 스켈레톤 김지수 선수가 광광님의 작품 ‘흥흥’과 ‘범장군’이 그려진 헬멧을 착용해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작업의 배경과 제작 과정이 궁금합니다.
2021년 하반기쯤, 김지수 선수에게 연락이 왔습니다. 올림픽 경기 출전 시 착용할 헬멧에 제 그림을 넣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를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다고 하셨는데요.
저의 그림이 함께 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라 흔쾌히 승낙했습니다.
김지수 선수가 마음에 드는 그림 몇 가지를 직접 골라주셨는데 그중에 ‘흥흥’과 ‘범 장군’이 있었습니다.
▲ 일러스트레이터 광광의 작품 ‘흥흥’과 ‘범장군’
‘흥흥’은 한국의 정서와 해학을 담아낸 작품으로, 태산에 울려 퍼지는 ‘흥’이란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큰 북 위에서 봉산탈춤을 추며 우리의 흥이 세상으로 울려 펼쳐지는 것을 표현한 그림이라, 김지수 선수의 바람과 잘 맞닿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완성된 헬멧 사진을 받아보니,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도 너무나 멋지게 완성되었더라고요.
하지만 당시엔 올림픽 출전이 어려워져서 훗날 꼭 출전해서 착용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올해 2월, 김지수 선수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2026 밀라노 동계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어 ‘흥흥’ 헬멧도 함께 한다는 소식이었죠!
올림픽 무대에서 제 그림을 볼 수 있어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경기가 모두 마무리되고 김지수 선수는 국제올림픽위원회로부터 스위스 로잔의 ‘올림픽 박물관’에 헬멧 기증 요청을 받았습니다.
간직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우리 문화를 세계에 더 잘 알릴 수 있겠다는 고심 끝에 기증을 결정했다고 합니다.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싶다는 바람이 결실을 본 순간이었습니다.
▲ 스위스 로잔 올림픽 박물관에 기증된 김지수 선수의 헬멧
(출처 : ‘올림픽 박물관 (The Olympic Museum Lausanne)’ 인스타그램)
한글을 비롯해 하회탈, 한복, 산수화 등 한국 전통문화 요소를 작품의 주요 소재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대학 교과목으로 ‘한국 미술사’ 강의를 들으며, 일제 강점기 시절 우리 미술에 얽힌 역사를 알게 됐습니다.
당시 일제는 한국의 주체성을 말살하기 위해 한글과 함께 ‘한국화’라는 고유 명칭의 사용을 금지했는데요.
우리 미술은 ‘중국화’나 ‘일본화’처럼 국가적 정체성을 담은 이름 대신, 이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동양화’라는 용어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해방된 이후에도 한국화보다 동양화로 불리는 경우가 더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이에 더 많은 사람이 한국화라는 이름을 알고, 우리의 그림이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자연스럽게 한국적인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고, 한국의 정체성을 담은 요소들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발견한 것이 바로 한글과 한복, 하회탈, 산수화와 같은 전통문화였습니다.
누가 보더라도 한눈에 한국을 떠올릴 수 있게 우리의 전통문화를 그림에 녹여내고자 했는데요.
그렇게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개인 작업 ‘KOREAN DREAM : 한국의 꿈’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 작품 ‘태산을 그리다’
▲ 작품 ‘흥락[興樂]
(FUN & JOY)’
한글만이 지닌 특별한 조형적 아름다움은 무엇인가요? 반대로 한글을 그림에 녹여낼 때 가장 어려운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당연한 이야기지만, 한글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강하게 지니고 있어요.
자음은 사람의 발음기관 모양을, 모음은 천(·), 지(ㅡ), 인(ㅣ)을 본떠 기하학적 형태 안에 우주의 원리라는 상징성을 시각화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로부터 한국화뿐만 아니라 다양한 문양이나 장식 등에 상징적 의미를 담아 시각적으로 표현했던 우리 민족의 미의식과도 깊게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요.
한글을 그림에 녹여낼 때 가장 고심하는 부분은 선의 두께입니다.
서체의 두께에 따라 그림의 전체적인 느낌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인데요.
서체가 얇으면 그림이 가벼워지고, 두꺼워지면 무거워지는 느낌이 듭니다.
특히 자음과 모음, 가로획과 세로획의 두께 차이만으로도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는데, 글자 안에서도 다양한 획이 존재하기 때문에 각 두께의 균형을 잘 맞춰야 해요.
그래서 항상 다양한 시도와 조합을 해보고 그려내게 됩니다.
한글 서체를 작업하실 때 훈민정음 창제 당시의 한글 서체나 고문서 속에서 영감받으신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네, 제가 가장 먼저 생각했던 한글의 이미지는 『훈민정음 해례본』 과 『훈민정음 언해본』이었습니다.
작업 초창기엔 특히 한글을 더 많이 그려 넣으려고 시도했는데, 그때 주로 언해본의 느낌과 발음기호 등을 모티브로 해서 넣었어요.
예를 들면 ‘맛가락’이라는 단어에서 ‘ㅏ’를 모두 ‘ㆍ’으로 표현하는 식으로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형태의 한글이 더욱 한국적으로 느껴졌고 시각적으로도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도 읽고 해석하는 재미가 있겠다고 생각했죠.
▲ 『훈민정음 해례본』, 간송미술문화재단 소장
▲ 『훈민정음 언해본』, 서강대학교 소장
한글은 내가 생각하는
가장 자유로운 한국의 얼굴
세계적인 영화와도 협업한 사례가 있던데요. 협업 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저에게 들어오는 영화 협업은 현지화가 목적이다 보니, 한국적인 느낌을 살리는 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국만의 문화적 특징을 넣고자 영화 속 인물에게 한복을 입히고, 더 나아가서 영화의 상징성을 찾아 한국적으로 표현하게 되었어요.
그 과정에서는 영화의 캐릭터, 이야기 등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자 노력합니다.
예를 들면 호랑이 민화의 범 무늬를 티라노사우루스에 입히거나, 로봇에게 두정갑
* 디자인을 적용하는 방식으로요.
특히 영화 제목의 경우 원본 타이틀 디자인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따로 그림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한글 서체를 찾아 넣기도 합니다. 보통은 저에게 서체 디자인까지 의뢰가 들어오는데요. 그림 전체의 분위기와 잘 어울리는 서체를 고려해서 넣거나 본래의 디자인에서 한국적인 느낌을 더해 표현합니다.
*두정갑: 두루마기 형태의 옷 안에 갑옷미늘을 부착하는 방식의 갑옷
▲ 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한국화 포스터
▲ 영화 ‘트랜스포머 ONE’ 한국화 포스터
한국 전통 요소를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할 때 어떤 원칙이나 기준을 가지고 작업하시나요?
한국적이되 너무 진부해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 제 작업의 기본 원칙입니다.
얇은 검정 테두리로 한국의 아름다운 선을 표현하면서 동시에 현대적인 느낌이 나도록 하고, 세련된 한국적인 색감과 구성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한국의 전통적인 느낌을 살리는 세부 묘사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죠.
요즘은 한국화·민화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좀 더 자유롭고 창의적인 방식으로 그림을 그리려고 합니다.
주제도 더욱 넓혀 케이팝이나 드라마, 산업 등 세계로 뻗어가는 한국의 다양한 현대 문화를 새로운 작품으로 담아낼 계획입니다.
한글을 활용해 시도해 보고 싶은 새로운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길상을 담은 문자도(文字圖)’와 ‘그래픽 문자도’ 시리즈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먼저 길상을 담은 문자도 시리즈는 꽃길, 행복, 평화 등과 같은 밝고 긍정적인 단어들을 문자도로 표현하는 작업입니다.
문자도란 단어와 관련된 요소들을 그려 넣어 글자를 꾸미는 형태의 그림을 말합니다.
본래 과거에는 유교적 교훈이나 기복 신앙을 기반으로 한자로 그려진 문자도가 대다수였지만, 현대에 와서는 한글을 활용한 다양한 문자도가 그려지고 있습니다.
저는 한글 문자도가 단순하고 명확한 그림이라 모두가 즐길 수 있는 친근한 그림이라고 생각해요.
아직 구상 단계이지만, 전통적인 한국화 스타일이 아닌 현대적인 느낌의 그래픽 문자도가 있습니다.
역동적인 단어와 어울리는 삽화를 타이포그래피 느낌으로 표현하는 작업인데요.
단어를 읽었을 때의 소리나 울림 등을 시각적으로 풀어내 보면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한국화를 전통적인 이미지가 아닌 현대 디자인적인 느낌으로 조화롭게 그려보고 싶었죠.
이 밖에도 다양한 스타일의 한글 문자도나 한글을 주제로 한 그림들을 위해 공부하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 길상을 담은 문자도 ‘꽃길’
▲ 그래픽 문자도 ‘어흥’
마지막으로. 일러스트레이터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한글은 제가 생각하는 가장 자유로운 한국의 얼굴입니다.
언어는 단순히 소통의 수단을 넘어 그 나라의 정신과 감정, 그리고 문화의 뿌리를 고스란히 담아내기 때문이죠.
오늘날 한국의 다양한 문화 콘텐츠와 산업이 세계적으로 꽃 피울 수 있었던 바탕에도 한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생각해요.
매일 보고 듣고 쓰는 일상의 언어지만, 창작자로서 조형적 완성도나 실용성을 마주할 때마다 새삼 그 탁월함을 깨닫습니다.
특히, 최근 한국 문화의 위상이 세계로 뻗어 나가면서 그 가치가 더욱 빛나고 있습니다.
우리만의 언어로 다양한 창작을 자유롭게 펼칠 수 있음에 매 순간 깊은 감사와 자부심을 느낍니다.
<사진 출처: 일러스트레이터 광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