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공감
이달의 한글문화인물

우리 말글로 배우고 꿈꾸는
어린이 세상, 방정환

이 즐겁고 깃거운 어린이의 날을 축복하십시다. 오월의 첫날을 축복하십시다.
녜전 녜-전부터 이날에 천 명의 소녀들이 종잘새보다 일즉 여서 봄을 차즈러 갓다는 날이 이날이며
짓밟히고 배주린 뭇사람이 생명을 차즈러 나선 날이 이날이며 세상 모든 사람이 오즉 어린이를 위하야
일하고 생각하고 놀고 하야 평화롭게 지내자는 날이 이날입니다.
어린이의 날, 󰡔어린이󰡕 제1권 제4호, 1923년

방정환 선생의 흑백 인물 사진이다. 중절모를 쓰고 코트 차림을 한 채 정면을 바라보며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방정환 선생 (자료제공: 한국방정환재단)

방정환 선생의 흑백 인물 사진이다. 중절모를 쓰고 코트 차림을 한 채 정면을 바라보며 차분한 표정을 짓고 있다.

방정환 선생 (자료제공: 한국방정환재단)

많은 아이들이 손꼽아 기다리는 5월이 돌아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즐겁게 맞이하는 어린이날은 어린이를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하고, 그들의 삶과 권리를 소중히 여기려는 노력 속에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어린이를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으로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과 성장을 위해 힘썼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린이를 위한 다양한 활동과 글쓰기를 통해 우리 사회에 새로운 시선을 제시했던 5월의 한글문화인물, 방정환을 소개합니다.

방정환과 어린이날, ‘어린이는 어른보다 더 새로운 사람’

방정환(方定煥, 1899~1931)은 어린 시절부터 아동과 청소년에게 신문물을 전파하고 그들을 계몽하기 위해 발행되었던 잡지를 두루 섭렵하며, 최남선이 1914에 발행한 잡지 󰡔청춘(靑春)󰡕에 소설, 시, 수필 등의 습작을 투고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기울며 제대로 학업을 이어갈 수 없게 되자 1915년 조선 총독부 토지 조사국에서 글씨를 베껴 쓰는 일을 하기도 하였으나, 어려운 중에도 습작과 투고를 멈추지 않고 문학가이자 아동 운동가로서의 자질을 키워 나갔습니다.

또한 천도교 신자였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라는 천도교의 만민 평등사상에 감화되었던 방정환은 1917년 천도교 제3세 교조인 손병희의 셋째 딸 손용화와 결혼했습니다. 1920년 일본 도쿄 동양대학(東洋大學) 철학과에서 아동 문학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하던 때에도, 도쿄와 서울을 왕래하며 천도교회 관련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1921년 4월에는 보성전문학교 선배 김기전과 함께 천도교청년회 산하에 ‘천도교소년부’를 설치하고 같은 해 5월에 이를 ‘천도교소년회’로 개편했습니다.

천도교소년회는 이듬해인 1922년 5월 1일 창립 1주년을 맞아 이날을 ‘어린이 날’로 제정하는 동시에 “우리는 참되고 씩씩하게 자라는 가운데 인정 많은 소년이 됩시다”, “항상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십시오”와 같은 문구를 내걸고 아동 및 청소년의 교육과 복지를 위한 활동을 펼쳤습니다. 잡지 󰡔어린이󰡕 제1권 제4호(1923.5.)에 묘사된 1922년의 어린이날 풍경은 기쁨과 축복으로 가득합니다.

작년의 이날 작년의 어린이의 날 생각만 하여도 지금도 긔운이 벗적벗적 나는 즐거운 날이엿슴니다 四日 저녁부터 東亞 朝鮮 每日 세 新聞이 크게 크게 써 노흔 報道에 이날의 서울 市街는 아츰부터 어리고 답고 새로운 공긔에 싸혀 잇섯슴니다 … 음악과 무도와 연극으로 밤이 깁기지 유쾌하게 유쾌하게 놀고 헤여젓슴니다 아아 어린이의 날 엇더케 이러케 어엽브고 즐거운 날임닛가

작년 오날, 󰡔어린이󰡕 제1권 제4호, 1923년

전날 저녁부터 각 신문사에서 어린이날 행사를 크게 홍보하고 당일 아침에는 어린이날 거리 선전을 위해 각종 선전지, 어깨띠, 꽃으로 장식한 자동차가 준비되었습니다. 방정환의 지휘 아래 ‘어린이의 날’, ‘어린이 제일’ 등이 쓰인 어깨띠를 매고 선전지를 돌리는 사람들, 깃발을 흔들며 노래를 부르는 아이들로 거리가 가득했습니다. 선전 후에는 천도교회 교당에 빽빽이 모여 밤늦게까지 음악, 연극, 무도 공연을 즐기기도 했습니다. 이듬해 5월 1일 어린이날 기념 축하식에서는 어린이가 마땅히 가져야 할 권리를 정리한 ‘어린이 선언’을 발표했는데, 이는 1924년 국제연맹이 채택한 ‘어린이 권리 선언’보다 1년 앞선 것이었습니다.

일.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쳐다봐 주시오
일. 어린이를 늘 가까이하여 자주 이야기해 주시오
일.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부드럽게 해 주시오 …

어린이 선언 중 ‘어른에게 드리는 글’, 1923년

잡지 󰡔어린이󰡕, 어린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쉬운 한글로

이러한 배경 속에서 방정환은 1923년 3월 20일 잡지 󰡔어린이󰡕를 창간했습니다. 창간호에 실린 편집 후기인 남은잉크를 보면, 󰡔어린이󰡕를 통해 아동과 청소년들이 재미있게 읽고 놀면서 배울 수 있도록 잡지를 만들었다는 창간 취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 6권 3호 표지 사진이다. 꽃밭 속에서 꽃을 들고 서 있는 어린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린이󰡕 6권 3호

󰡔어린이󰡕 7권 3호 표지 사진이다. 세 명의 아이가 함께 앉아 있는 사진과 함께 붉은색 ‘어린이’ 글자가 크게 보인다.

󰡔어린이󰡕 7권 3호

󰡔어린이󰡕 12권 1호 표지 사진이다. 밤하늘과 초승달 배경 아래 소년이 개와 함께 서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어린이󰡕 12권 1호

󰡔어린이󰡕 11권 12호 표지 사진이다. 노란색 배경 아래 소년 두 명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우리 󰡔어린이󰡕 잡지에 글 써 주시는 선생님들」, 󰡔어린이󰡕 제12권 제1호 사진이다. 두 페이지에 걸쳐 여러 인물의 흑백 초상 사진이 격자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어린이󰡕 11권 12호

󰡔어린이󰡕 6권 3호 표지 사진이다. 꽃밭 속에서 꽃을 들고 서 있는 어린아이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어린이󰡕 7권 3호 표지 사진이다. 세 명의 아이가 함께 앉아 있는 사진과 함께 붉은색 ‘어린이’ 글자가 크게 보인다.
󰡔어린이󰡕 12권 1호 표지 사진이다. 밤하늘과 초승달 배경 아래 소년이 개와 함께 서 있는 삽화가 그려져 있다.
󰡔어린이󰡕 11권 12호 표지 사진이다. 노란색 배경 아래 소년 두 명이 스케이트를 타고 있다. 「우리 󰡔어린이󰡕 잡지에 글 써 주시는 선생님들」, 󰡔어린이󰡕 제12권 제1호 사진이다. 두 페이지에 걸쳐 여러 인물의 흑백 초상 사진이 격자 형태로 정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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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담이나, 수양담은 學校에서 만히 듯는 고로. 여긔서는 그냥 자미잇게 읽고 놀자, 그러는 동안에, 모르는 동안에 제절로, ᄭᅢᄭᅳᆺ하고 착한 마음이 자라가게 하자! 이러케 생각하고 이 책을 ᄭᅮ몃습니다.

남은잉크, 󰡔어린이󰡕 제1권 제1호, 1923년

방정환이 조직한 아동 문화 운동 단체인 ‘색동회’ 회원들을 비롯하여 피천득, 박태원, 윤극영, 주요섭, 이태준, 심훈 등 당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나 문인들이 󰡔어린이󰡕에 다양한 문학(동화, 동요, 동시, 소설), 교양, 소화, 편지 등을 소개했습니다. 󰡔어린이󰡕1923년부터 1935년까지 약 12년 동안 총 122호가 발행되고 광복 후 1948년 5월 복간되어 총 137호까지 발행되었는데, 이 같은 발행 규모와 지속력은 어린이 잡지로서는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잡지 ‘개벽’ 31호에 실린 글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 지면 이미지다. 오른쪽에는 제목이 세로로 크게 배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필자명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본문은 한글과 한자가 섞인 세로쓰기 형태로 빼곡하게 구성되어 있다.

우리 󰡔어린이󰡕 잡지에 글 써 주시는 선생님들, 󰡔어린이󰡕 제12권 제1호, 1934년

⑥ 피천득(皮千得, 1910~2007) , ⑦ 박태원(朴泰遠, 1910~1986) , ⑨ 윤극영(尹克榮, 1903~1988)
⑮ 주요섭(朱耀燮, 1902~1972) , ⑰ 이태준(李泰俊, 1904~?) , ㉗ 심 훈(沈 熏, 1901~1936)

이 같은 󰡔어린이󰡕는 어린이들이 보도록 만든 잡지이기 때문에 어려운 한자는 되도록 사용하지 않고 한글로 쉽게 풀어쓴 글을 싣는 데 앞장섰습니다. 이뿐만 아니라 한글의 역사와 그 가치를 쉽게 설명한 조선 글자를 만들던 해(4권 1호),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4권 6호), 세계에 그 유가 없는 조선의 유명한 글」(7권 3호) 등을 부지런히 소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은 일제 강점기 한글 운동을 주도한 조선어 학회의 권덕규(權悳奎)가 쓴 것입니다. 한글이 다른 문자들과 비교했을 때 가진 특징과 그 장점을 강조함으로써 어린이들이 우리 말과 글에 대한 자부심과 긍지를 키워나갈 수 있도록 도왔습니다. 우리말이 ‘국어’가 아닌 ‘조선어’로 낮은 취급을 받고, 보통학교에서는 우리말보다 일본어를 훨씬 많이 가르치던 시절에 󰡔어린이󰡕는 우리 말과 글을 익히고 이에 대한 자부심을 키워나갈 수 있도록 하는 훌륭한 교재였던 것입니다.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 󰡔어린이󰡕 제4권 제6호, 1926년 사진이다. 본문은 빼곡한 세로 글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한반도 지도를 둘러싼 원형 삽화가 함께 보인다.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 󰡔어린이󰡕 제4권 제6호, 1926년 사진이다. 본문은 빼곡한 세로 글줄로 구성되어 있으며 상단에는 한반도 지도를 둘러싼 원형 삽화가 함께 보인다.
가.
세계의 글은 크게 한문(漢文) 같은 그림글과 로마글자 같은 소리글로 나눌 수 있다.
나.
조선글은 소리글로서 말하는 소리를 그대로 그리도록 만든 것이다.
다.
소리글자 가운데에는 일본글자처럼 소리를 덩어리로 현하는 것과 조선글처럼 소리의 갈래갈래를 샅샅이 갈라서 드러내는 것이 있다.
라.
조선글로는 이 세계 어느 나라 말도 적어 형용하지 못할 것이 없다.
마.
이 때문에 외국말을 배울 때도 조선사람은 말재주가 좋으니 과연 조선글은 세계에서 으뜸이다.

조선글은 천하에 제일,
󰡔어린이󰡕 제4권 제6호, 1926년

우리글로 된 재미난 읽을거리, ‘동화’의 기틀을 세우다

한편 방정환은 아동 정신생활의 중요한 요소이자 요긴한 양식으로서 ‘동화(童話)’가 갖는 가치를 강조하고, 동화의 기틀을 세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잡지 󰡔개벽󰡕에 수록한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를 통해 동화의 개념과 범주, 대상 독자 등을 정리했습니다. 특히 외국 동화를 들여와 소개하는 것보다도 우리나라에서 전래되어 온 동화를 발굴하고 수집하는 일의 시급함을 주장했습니다.
잡지 ‘개벽’ 31호에 실린 글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 지면 이미지다. 오른쪽에는 제목이 세로로 크게 배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필자명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본문은 한글과 한자가 섞인 세로쓰기 형태로 빼곡하게 구성되어 있다.

새로 개척되는 동화에 관하여,
󰡔개벽󰡕 31호, 1923년

어린이들에게 재미있고 유익한 읽을거리를 마련해 주고자 잡지, 신문 등의 다양한 매체에 실었던 동화들은 방정환이 세상을 떠난 후, 그의 유족과 그를 따르던 후배들에 의해 󰡔소파전집(小波全集)󰡕(1940), 󰡔소파동화독본(小波童話讀本)󰡕(1946~1947) 등의 형태로 한데 모이게 되었습니다. 특히 방정환의 동화 글쓰기는 어린이가 쉽게 읽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한글 표기를 우선으로 한 것이 큰 특징입니다. 동화가 가져야 할 첫째 요건으로 ‘아동들이 잘 알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라는 생각을 가졌던 만큼, 쉬운 우리말과 직관적인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한편 그는 어린이의 흥미를 끌기 위해 소파(小波), 잔물, 몽중인(夢中人), ㅈㅎ생(生), ᄭᅡᆯᄭᅡᆯ박사 등 수십 가지의 필명을 사용했는데 번역‧번안 동화는 ‘몽중인’, 이솝우화는 ‘ㅈㅎ생’, 전래동화는 ‘소파’를 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소파동화독본 3권’, 1947년 사진이다. ‘나비의 꿈’이라는 제목이 적힌 붉은색 표지의 동화책이 보이며, 테두리 장식과 삽화가 함께 인쇄되어 있다.

소파동화독본 3권, 1947년

방정환이 지은 동화, 동요, 동화극의 모음집으로
까치옷(1권), 울지 않는 종(2권), 나비의 꿈(3권),
귀 먹은 집오리(4권), 황금거위(5권)으로 발행되었습니다.

‘이상한 샘물’, 󰡔소파전집󰡕, 1940년 사진이다. 오른쪽에는 ‘이상한 샘물’ 글이 실린 지면으로, 세로쓰기 형태의 한글과 한자가 빼곡히 적혀있다.

이상한 샘물, 󰡔소파전집󰡕, 1940년

방정환이 지은 동화, 동요, 동화극 등 7개 분야의 글을
모은 책입니다. ‘이상한 샘물’, ‘호랑이 형님’ 등의 전래동화를
비롯한 창작동화, 번역동화 24편이 실려 있습니다.

우리 말글로 쉽게 쓴 다양한 읽을거리를 만들어 어린이들의 지식과 경험을 넓혀 나갔던 방정환. 어린이를 위했던 그의 마음은 글 못 읽는 백성을 위해 쉬운 한글을 만들었던 세종의 마음과도 닮아 있습니다. 어린이날과 세종대왕 나신 날(5월 15일)이 함께한 5월을 맞아 방정환이 남긴 소중한 한글문화 자료를 찬찬히 들여다보며, 새 시대를 이끄는 주체인 어린이와 그 어린이들을 키워낸 우리 말과 글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작성: 김미미 학예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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