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현배 선생은 단순히 우리 말과 한글을 연구한 국어학자가 아니었다.
그는 말과 글을 ‘연구 대상’ 이전에 ‘사람의 삶과 정신을 떠받치는 바탕’으로 보았다.
글을 읽고 쓰는 일은 곧 생각하고 판단하며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이라는 믿음, 그리고 그 힘을 누구도 빼앗아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그의 삶을 관통했다.
그 신념은 학문으로 구체화되었다. 『우리말본』(1937)은 우리말의 구조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기념비적 저술로, 국어학을 학문적으로 정립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말 존중의 근본뜻』(1951)에서는 우리말을 아끼고 가꾸는 일이 곧 민족의 정신을 지키는 길임을 강조했다.
그의 저술은 단순한 이론서가 아니라, 언어를 통해 인간의 존엄을 세우려는 선언이었다.
▲ 『우리말본』 (정음사, 1936년 이후).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 『우리말 존중의 근본뜻』(정음사, 1953).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1938년 봄, 연희전문학교 국문과에서 그의 강의가 휴강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강의실에 도착해 보니, 최현배 교수는 이미 단상 앞에 서 있었다.
얼굴은 두 눈만 남기고 하얀 붕대로 감겨 있었다.
머리 부스럼 수술을 받은 직후였지만, 그는 강의를 쉬지 않기 위해 급히 학교로 달려온 것이다.
제자들의 기억 속에서 그의 강의는 “결코 휴강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이 일화는 그가 학문과 교육을 얼마나 책임 있게 받아들이고 몸을 던져 임했는지를 잘 보여준다.
최현배에게 우리 말과 글을 지킨다는 것은 거창한 이념 이전에, 교육의 현장에서 인간을 존중하는 태도이자 투철한 책임이었다.
그의 이러한 태도는 조선어학회 활동으로 이어졌다.
그는 동료 학자들과 함께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해 우리말을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사전을 편찬하는 일에 힘썼다.
이는 단순한 학술 활동이 아니라 식민지 현실 속에서 민족의 언어를 지키기 위한 문화적 독립운동이었다.
1942년, 일제가 우리말 연구와 사전 편찬 작업을 치안 방해 행위이자 민족운동으로 간주함으로써 조선어학회를 탄압하며 일어난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그는 체포·투옥되어 광복이 될 때까지 3년간 옥고를 치렀다.
말과 글을 지키는 일이 곧 저항이 되었던 시대, 그는 그 선택의 무게를 온몸으로 감당했다.
▲ 금서집 錦書集, 1930년대,
외솔기념관 소장
그가 남긴 휘호, “한글이 목숨”은 외솔 최현배의 언어관을 가장 응축해 보여주는 기록이다.
이 휘호는 1932년에 작성된 것으로 확인되었으며, 후대에 실물 자료가 발견되어 언론을 통해 공개된 바 있다.
당시 그는 조선어학회 활동에 참여하며 우리말 연구와 보급에 힘쓰고 있던 시기였다.
일제의 동화 정책이 강화되던 상황에서 ‘한글이 목숨’이라는 표현은 단순한 애정의 표시가 아니라, 언어를 존재의 근거로 인식한 선언이었으며 감상적 구호가 아니라, 그의 학문과 실천을 꿰뚫는 신념의 요약인 것이다.
말과 글을 지킨다는 것은 곧 인간의 정신과 존엄을 지키는 일이라는 그의 생각이 이 짧은 휘호에 담겨 있다.
이러한 의식은 『한글갈』(1940)과 『한글의 투쟁』(1938), 그리고 『조선민족 갱생의 도』(1930)와 같은 저술에서도 분명히 드러난다.
그는 한글을 지키는 일이 단지 문자 생활의 개선이 아니라, 민족이 스스로 서는 길이라고 보았다.
해방 이후에는 『글자의 혁명』(1947), 『한글의 투쟁』(1954), 『한글 가로글씨 독본』(1968), 『한글만 쓰기의 주장』(1970) 등을 통해 한글 가로쓰기, 한글 전용과 풀어쓰기의 이론을 발표함으로써 문자 생활의 개혁을 제안하며 더 많은 사람이 쉽게 읽고 쓸 수 있는 사회를 꿈꾸었다.
한글 전용, 풀어쓰기, 가로쓰기 주장은 학술적 논쟁을 불러일으켰지만, 그것의 기준은 언제나 같았다.
이 말과 글이 사람을 더 자유롭고 주체적으로 만드는가.
이것은 단지 편리함이나 효율의 문제가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읽고 쓰고 생각할 수 있게 만드는 일이었다.
이는 국어학자의 연구를 넘어, 국어운동가의 실천이었다.
최현배 선생에게 있어 학문과 운동, 연구와 실천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는 말과 글을 통해 인간을 세우고, 그 인간이 나라를 세운다고 믿었으며 ‘배달말은 배달 정신의 상징이며, 표현이며, 배달 문화의 총목록’이라고 보았다.
우리말과 글의 연구와 교육, 보존을 위해 피땀어린 노력과 투쟁을 멈추지 않은 ‘외솔 최현배의 삶’은 오늘 우리에게 조용히 묻는다.
오늘 우리는 너무도 쉽게 말을 소비하고,
너무도 빠르게 나의 글을 흘려보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말과 글을 바로 세우는 일이
곧 우리 자신과 나라의 문화를 바로 세우는 일임을
우리는 잊고 있지는 않은가.
“연희전문학교 봉직 13년 동안에 배달말의 연구와 교수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출렁대는 일어의 강열한 도치(波濤)에 홀로 버티고서
우리말 찾기와 쓰기에 정성과 용기를 다하였다.
한글학회의 동지와 더불어 한글 운동에 몸 바치어,
회의로, 강연으로, 우리말 존중, 겨레 의식의 고취에, 편한 날이 없었다.”
- 《나라사랑의 길》(1958) 머리말 2쪽 중
“사람이 말을 만들었음이 사실인 동시에 말이 도로 사람을 만듦도 또한 사실인 것 같이,
겨레가 겨레말을 만듦이 사실인 동시에 겨레말이 도로 겨레를 만듦이 또한 사실이다.”
- 《우리말 존중의 근본뜻》 (1951)
<작성: 김서영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