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봉 디자이너
이상봉 디자이너
파리, 뉴욕 등 세계적인 패션 중심지에서
한글 패션으로 세계인의 시선을 사로잡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입니다.
그는 한글 문자의 조형미를 살린 독창적인 디자인으로,
한글과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한글을 입은 패션으로 세계 무대에
당당히 이름을 올린 이상봉 디자이너를 만나,
한글 패션의 시작부터 그가 앞으로 이루고 싶은 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사명감으로 시작한 한글 패션
이제는 내 삶의 일부
안녕하세요. <한박웃음> 독자들에게 인사와 소개 부탁드립니다.
반갑습니다. <한박웃음> 독자 여러분,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입니다. 저는 1985년 ‘LIE SANGBONG’ 브랜드를 선보인 이후, 1987년 파리 패션위크에 진출했고, 2002년부터는 파리와 뉴욕을 오가며 한국의 패션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현재는 현역 디자이너로 활동할 뿐 아니라, 한국패션디자이너연합회와 고교패션콘테스트 회장직을 수행하며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또한, 다문화 학생들에게 진로를 탐색할 기회를 제공하는 꿈토링스쿨 교장으로서 아이들의 꿈을 지원하는 일에도 열정을 쏟고 있습니다.
디자이너님께서 한글을 처음 패션에 접목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시작은 일종의 사명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열린 한불 수교 행사를 준비하던 당시, 여러 문화계 인사들과 회의를 할 일이 있었습니다.
각 나라의 상징을 비교하던 중, 외국에서 패션쇼를 여는 만큼 ‘가장 한국적인 것을 보여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는 창의적인 소재를 찾기 위해 샤머니즘이나 불교적인 요소들도 다뤄봤지만, 결국 가장 독창적이고 아름다운 답은 한글이었습니다.
2004년 첫 시도를 거쳐 2005년부터 본격적으로 한글 패션을 선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파리 패션쇼 진출 당시에는 외국인들에게 낯선 한글을 어떻게 옷에 녹여낼지, 아름다운 한글의 조형미를 어떻게 전달할지 치열하게 고민했습니다.
다행히 해외 패션 관계자와 언론들이 한글의 미학적 가치에 먼저 반응해 주었고, 그 확신을 통해 한글을 알리는 일에 더 매진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한글은 제 디자인을 넘어 삶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한글을 패션 디자인에 활용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원칙이나 기준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 디자인의 핵심은 ‘이야기가 담긴 조형미’입니다.
우선 시각적으로 훈민정음체부터 서예가의 필체, 어린아이의 순수한 손 글씨까지 다양한 서체를 연구하며 한글 본연의 조형적 아름다움을 찾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글자의 모양만 빌려오는 건 아닙니다.
‘사랑’, ‘어머니’, ‘꿈’ 같은 직관적인 단어나 시(詩), 때로는 장사익 선생님의 편지글처럼 그 안에 담긴 이야기와 의미를 전달하는 것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한글이 세계 무대에서 더 빛날 수 있도록 단청, 창살, 태극기 등 한국적인 요소들을 조화롭게 접목하고, 프린트뿐만 아니라 자카드(직조기계를 이용해 원단에 무늬를 넣어 짠 직물) 등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 해마다 새로운 한글의 표정을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결국 옷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 입는 사람과 보는 사람 모두에게 울림을 주는 것이 저의 원칙입니다.
올해 한글날을 맞아, ‘2025 한글한마당(한글문화산업전)’에서 한글 패션쇼를 개최하셨습니다. 패션쇼 개최하신 소감과 패션쇼에서 선보이신 작품 중 특히 기억에 남는 의상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지난 22년 동안, 저는 매년 패션쇼 무대에 한글을 올려왔습니다.
이번 쇼를 준비하며 그동안의 작품들을 정리하다 보니, 마치 제 지난날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는 듯한 뭉클함이 느껴졌습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작품은 한국-오스트리아 수교 행사 때 선보였던 ‘아리랑’ 의상입니다.
이 의상은 130년 전 최초의 아리랑 악보에 ‘LIE SANGBONG’만의 디자인을 자수 등 다양한 기법으로 녹여낸 작품으로, 음악과 패션이 만난 특별한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장사익, 이목상, 김지수, 조성주 등 당대 최고의 서예가님들과 함께했던 작품들을 다시 마주하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모두가 반대하던 시절에도 묵묵히 걸어온 길, ‘한글’이라는 주제가 이제는 제 인생 그 자체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제 삶의 역사인 작품들을 한자리에서 보여드릴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이제는 한글이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문화 중 하나가 되었다는 사실에 큰 자부심과 긍지를 느낍니다.
▲ 이상봉 디자이너의
‘아리랑’ 작품
▲ ‘2025 한글한마당(한글문화산업전)’에서
한글 패션쇼를 선보인 이상봉 디자이너
한글, 내 삶을 이끌어온 나침반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
디자이너님께서 느끼신 한글이 지닌 미적인 아름다움에 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한글을 볼 때마다 직선의 강직함과 곡선의 유려함이 어우러진 조형미에 감탄하곤 합니다. 해외에서 한글 의상을 입었을 때 쏟아지는 찬사는 그 미적 가치를 뒷받침해 주지요. 하지만 제가 더 깊이 파고드는 아름다움은 겉모습보다 그 안에 담긴 ‘의미의 그릇’에 있습니다. 자음과 모음을 넘어, 단어가 완성되었을 때 비로소 보이는 아름다움입니다. ‘어머니’나 ‘사랑’ 같은 단어를 보시면 알 수 있듯이, 영어보다 훨씬 간결하고 단순한 형태지만 그 안에 담긴 정서의 깊이는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 단순함 속에 깃든 거대한 의미, 그것이 제가 사랑하는 한글의 아름다움입니다.
앞으로 ‘한글’을 주제로 구상 중인 새로운 프로젝트나 이루고 싶으신 꿈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질문에 대한 답은 하나입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해서 창작하고 치열하게 도전하는 것입니다. 한글은 저에게 마르지 않는 영감의 원천입니다. 단순히 옷을 만드는 것을 넘어, 한글에 담긴 철학과 이야기를 전 세계인들이 공감할 수 있는 문화 코드로 확장하고 싶습니다. 매년 새로운 소재와 기법으로 한글의 또 다른 얼굴을 찾아내고, 그 과정을 통해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증명해 보이는 것. 그것이 제가 디자이너로서 꿔온 꿈이자 앞으로 걸어갈 길입니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님께 ‘한글’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정의하자면, 한글은 제 ‘인생 그 자체’입니다. 이상봉이라는 이름으로 브랜드를 이끌어온 지 어느덧 40년이 되었는데, 그중 절반이 넘는 22년을 한글과 함께했습니다. 처음에는 그저 독창적인 디자인 소재로 만났지만, 지금은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이 되었습니다. 언젠가 디자이너로서의 꿈을 내려놓는 순간이 오더라도, 한글과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일만큼은 끝까지 해내야 한다는 사명감이 가슴 깊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렇기에 저에게 한글은 단순한 표현 도구를 넘어, 제 삶을 이끌어온 나침반이자 필연적인 존재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