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공감
이달의 한글문화인물

한글의 가치를 세계에 알린 푸른 눈의
한글학자, 호머 B. 헐버트

“조선에는 모든 소리를 자신들이 창제한
고유의 글자로 표기할 수 있는 완벽한 문자가 존재한다.”

-호머 B. 헐버트(Homer B. Hulbert, 1863~1949)

호머 B. 헐버트의 흑백 초상화 사진이다.

헐버트(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호머 B. 헐버트의 흑백 초상화 사진이다.

헐버트(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미국 출신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호머 B. 헐버트

오늘날 한글은 세계인이 배우고 사용하는 문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그러나 19세기 말 조선에서는 한글이 지금과 같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공식 문서는 한자로 작성되었고, 한글은 여성과 평민이 사용하는 문자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한글의 가치와 우수성, 가능성을 누구보다 먼저 발견하고 세계에 알린 사람이 있었습니다. 미국 출신 교육자이자 독립운동가인 호머 베잘렐 헐버트입니다.

1886년 육영공원 교사로 조선을 찾은 헐버트는 한글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한글이 배우기 쉽고 소리를 정확하게 표현하는 과학적인 문자임을 깨닫고, 교육과 연구, 저술을 통해 그 가치를 국내외에 널리 알렸습니다. 또한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헌신하며 한국을 자신의 두 번째 조국으로 여기고 평생을 바쳤습니다. 2026년은 한글날 제정 10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국립한글박물관은 헐버트의 대표 저술인 사민필지초학지지를 통해 그가 남긴 한글 사랑과 교육 정신을 소개합니다.

최초의 순한글 세계지리 교과서 사민필지

1891년에 간행된 사민필지(士民必知)는 우리나라 최초의 순한글 세계지리 교과서입니다. '선비와 백성이 반드시 알아야 할 지식'이라는 뜻을 담은 제목입니다. 헐버트는 이 책을 한글만으로 집필하여 당시 일반 백성들도 세계의 지리와 국제 정세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세계지리와 각 나라의 사정에 대해 유용한 내용을 폭넓게 담았고, 모든 도량형 단위를 당시 조선이 사용하던 리(거리), 척(높이), 석(부피) 등으로 표기하여 조선인들이 책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또한 기후를 설명할 때에도 우리나라를 기준으로 다른 나라와 비교하여 서술한 점은, 헐버트가 조선인 독자를 위해 이 책을 집필했음을 잘 보여줍니다. 한글을 단순한 문자로 보지 않고, 모든 사람이 배우고 성장할 수 있는 도구로 이해한 그의 생각이 잘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중국 글자로는 모든 사람이 빨리 알며 널리 볼 수가 없고 조선 언문은 본국 글일뿐더러 선비와 백성과
남녀가 널리 보고 알기 쉬우니. 슬프다! 조선 언문이 중국 글자에 비하여 크게 요긴하건만 사람들이 요긴한
줄도 알지 아니하고 오히려 업신여기니 어찌 안타깝지 아니하리오.”

근대 교육을 이끈 초학지지

헐버트는 사민필지에 이어 1906년 어린이를 위한 세계지리 교과서 『초학지지 를 펴냈습니다. 『초학지지는 어린 학습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세계를 소개한 책으로, 삽화와 지도를 적극 활용하고 쉬운 한글 문장을 사용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교과서를 넘어, 한글을 통해 누구나 지식을 배울 수 있다는 교육 철학을 실천한 결과였습니다.
 『사민필지』에 소개된 아시아 지도로, 조선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명과 경계가 한글로 표시되어 있다.

사민필지에 소개된 아시아 지도

『사민필지』 서문이다. 오른쪽에는 세로 방향의 한글 본문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고 왼쪽에는 항목별 표가 수록되어 있다.

사민필지 서문

『초학지지』속 한글 세계 지도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 지역의 지명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초학지지속 한글 세계 지도

 『사민필지』에 소개된 아시아 지도로, 조선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여러 지역의 지명과 경계가 한글로 표시되어 있다.
『사민필지』 서문이다. 오른쪽에는 세로 방향의 한글 본문이 빼곡히 인쇄되어 있고 왼쪽에는 항목별 표가 수록되어 있다.
『초학지지』속 한글 세계 지도로 아시아·유럽·아프리카·오세아니아 등 세계 각 지역의 지명이 한글로 표기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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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 한글을 소개하다

헐버트는 국내뿐 아니라 해외 학계에도 한글의 가치를 적극 소개했습니다. 1892년 영문 월간지 The Korean Repository에 발표한 「The Korean Alphabet」에서는 한글의 창제 원리와 문자 체계를 서양 학계에 처음으로 체계적으로 소개했습니다. 이어 1904년 스미스소니언 보고서에 발표한 「The Korean Language」에서는 한국어와 한글의 특징을 분석하며 다음과 같이 평가했습니다.

“한국어는 대중의 연설 언어로서 영어보다 우수하다.”


당시 서양 중심의 언어관을 고려하면 매우 이례적인 평가였습니다. 그는 한글이 소리를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고, 배우기 쉬우며, 누구나 사용할 수 있는 문자라는 점을 높이 평가했습니다. 오늘날 유네스코가 한글의 과학성과 독창성을 높이 평가하기 훨씬 전부터, 헐버트는 이미 세계를 향해 한글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1904년 헐버트가 스미스소니언 보고서에 실은 한국어 관련 논문으로, 펼쳐진 책의 왼쪽 면에 ‘THE KOREAN LANGUAGE’라는 제목의 영문 본문이 인쇄되어 있고 오른쪽 면은 비어 있다.

▲ 헐버트가 스미소니언 보고서에 실은 논문(1904)

한글 사랑은 곧 대한제국 사랑이었다

헐버트는 누구보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사랑하였고, 한문으로 기록된 역사서 등을 참고하여 1905년 출간한 단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를 기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종합역사서 한국사(History of Korea)를 집필하였습니다. 마지막 구절에서 다음과 같이 정리하며 장차 한민족이 세계 속에 우뚝 서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예언자 흉내를 내는 것은 역사가의 본문이 아니며, 역사가는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 것인지 예단하려
해서도 안된다. 하지만 한민족이 장차 경이적인 역사를 만들어 갈 것이라는 나의 희망은 허용돼야 한다.”


헐버트가 사랑한 것은 단지 한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대한제국의 자주독립을 위해 누구보다 헌신했습니다. 고종의 비밀 특사로 국제사회에 대한제국의 독립을 알리는 역할을 수행했고, 일제강점기에도 한국의 독립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했습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는 외국인 최초로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을 추서 받았습니다. 1949년 생을 마감하기 전 그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겼습니다.

"나는 웨스트민스터 사원보다 한국 땅에 묻히기를 원한다"


그의 바람대로 현재 헐버트 박사는 서울 양화진 외국인선교사묘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그는 한국의 역사, 문화에 깊이 매료되어 한민족의 본질을 누구보다 깊이 이해하고자 했으며 그는 '교육만이 살길이다'라는 신념 아래 근대 교육의 초석을 놓았고, 한글을 통한 교육 확장만이 한민족의 문명 진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면서 한글 사용을 외롭게 외쳤습니다. 또한 일제의 침략주의를 보고만 있을 수 없어서 고종 황제의 밀사로, 민권운동가로 일본과 맞서 싸우며 그의 삶은 한글에 대한 사랑이 곧 한국과 한국인의 미래를 향한 사랑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방한 당시 헐버트가 꽃다발을 든 채 한국인 관계자와 군인들 사이에 서 있다.

▲ 방한 당시 헐버트(독립기념관 사진 제공)

한글날 100주년, 다시 만나는 헐버트

1926년 제정된 한글날은 올해로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오늘날 한글은 세계인이 배우고 사용하는 문자이자,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의 위상은 한글의 가치를 일찍이 발견하고 널리 알리고자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노력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이 소장한 사민필지초학지지는 헐버트가 품었던 교육정신과 한글 사랑을 생생하게 전하는 문화유산입니다. 이 책들은 단순한 교과서를 넘어, 한글이 모든 사람이 배우고 소통할 수 있는 문자라는 믿음을 실천으로 옮긴 기록입니다. 헐버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인 1950년 그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공로훈장을 받았습니다. 외국인인 그가 한국을 위해 했던 헌신과 사랑은 오래도록 기억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글날 제정 100주년을 맞아, 한글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배우고 소통하기를 바랐던 헐버트의 뜻을 다시 한번 되새겨 봅니다.
헐버트가 1950년에 받은 ‘건국공로훈장증’이다. “호우머비헐버트는 한국의 자유와 독립을 위하야 의리상친구로 희생적 공헌이 만핫슴으로 민국정부에서 삼 등 건국공로훈장을 증여하야 길이 표창함”

▲ 건국공로훈장증(헐버트박사기념사업회 사진 제공)

<작성: 이가나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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