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물관 공감
이달의 한글문화인물

한글 점자를 만든
시각장애인의 세종대왕, 박두성

“눈이 보이지 않으면 마음이 닫히고 세상도 닫히고 맙니다.”
- 박두성(朴斗星, 1888~1963)

박두성 선생의 흑백 초상화 사진이다.

박두성(朴斗星, 1888~1963)
1959년 촬영,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 선생의 흑백 초상화 사진이다.

박두성(朴斗星, 1888~1963)
1959년 촬영,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세상의 빛과 지식을 선물한 ‘시각장애인들의 세종대왕’이 있습니다. 바로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고안하고 세상에 널리 알린 송암 박두성(朴斗星, 1888~1963)입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훈민정음(訓民正音)’이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이듯, ‘훈맹정음’은 ‘눈먼 이를 가르치는 바른 소리’라는 뜻입니다. 이름에서부터 한글 창제 정신을 잇겠다는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가오는 11월 4일 훈맹정음 반포 100주년을 맞아, 박두성과 훈맹정음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고자 합니다.

어둠을 밝히는 여섯 개의 별빛, 한글 점자의 탄생

박두성은 1888년 지금의 인천광역시 강화군에서 태어났습니다. ‘두성’이라는 이름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본명은 ‘두현’입니다. 1906년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박두성은 양현동 보통학교에 부임하면서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1913년 1월 제생원(濟生院) 맹아부 (盲啞部) 교사로 발령 받으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됩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점자로 된 교과서조차 없이 일본어로 수업을 받고 있는 모습에 충격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가르치던 점자 역시 일본어 기반의 점자뿐이었습니다. 시각장애인 학생들은 우리말을 들을 수도, 우리말로 표현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박두성은 일본인 교사의 일본어 점자 수업을 통역하면서 점자 체계를 연구하고 일본에서 점자 인쇄기를 들여와 1913년 8월 한국 최초의 점자 교과서(일본어 점자)를 출판하였습니다. 하지만 더욱 본질적인 문제는 우리말을 제대로 표기할 수 있는 한글 점자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에는 평양에서 활동하던 선교사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이 고안한 4점식 점자를 사용하고 있었으나, 초성과 종성이 구별되지 않는 등 실정에 맞지 않았습니다. 박두성은 1920년 1월 한글 점자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1921년 12월에는 한글의 초성 자음 14자를 3점 점자로 옮기는데 성공했고, 이듬해 1922년에는 중성 모음 10자를 2점식 점자로 옮기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세 명의 시각장애 학생에게 점자로 번역한 종이를 나누어주며 시범적으로 사용해보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3.2 점자’로 불리는 이 점자 또한 초성과 종성의 구별에 어려움이 있어 다시 연구를 하게 됩니다. 1923년 4월 제자들과 함께 비밀리에 ‘조선어점자연구위원회’를 조직하고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박두성은 1926년 8월 12일 마침내 자음과 모음, 숫자가 들어가 있는 63자의 한글점자를 완성했습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4일 한글 점자 ‘훈맹정음(訓盲正音)’을 세상에 발표하였습니다. 이 날짜는 세종대왕이 ‘음력 9월 끝날’ 훈민정음을 반포하였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이를 양력으로 환산하여 정한 것입니다.

손끝으로 읽는 한글 ‘훈맹정음(訓盲正音)’

‘훈맹정음’은 6개의 점을 이용한 63개의 점자입니다. 자음과 모음, 문장부호, 숫자까지 모두 표현할 수 있으며, 소리 나는 대로 쓰고 쓴 대로 읽을 수 있습니다. 박두성은 배우기 쉽고, 점 수효가 적고, 서로 헷갈리지 않아야 한다는 세 가지 원칙에 기초하여 훈맹정음을 만들었습니다. 한글과 마찬가지로 초성(자음 첫소리), 중성(모음), 종성(자음 받침)으로 구조를 잡았고 많이 쓰는 글자는 약자로 만들어 읽기 편하게 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훈맹정음』 사진이다.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다.

▲ 훈맹정음(1926)
29.8×19.5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한 뒤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한 장으로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로줄에 자음, 가로줄에 모음을 배열하고 조합된 글자마다 그에 해당하는 점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서 아래에는 약자, 장음, 숫자의 점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표지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이다. 한글점자 관련 기록이 적힌 오래된 원고가 펼쳐져 있다.

▲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1946, 박두성)
34.0×22.0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의 한글 점자 육필 원고본입니다. 머리말에 이 책을 쓴 이유를 밝히고 있으며,
본문에는 ‘점자’, ‘한글점자’, ‘점자를 배우려면’, ‘수학 부호와 화학식 기호’, ‘음악 부호’, ‘외국어 점자’ 등 한글 점자에 관련된 내용을 실었습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 표지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한글점자 육필 원고본』이다. 한글점자 관련 기록이 적힌 오래된 원고가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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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사람의 지체에 있어 가장 요긴한 눈을 잃은 것은 불행이 아닐 수는 없지만은 연구하여 발명된 점자는 그들의 길잡이요, 등대로서 전화위복의 지남침이 될 수 있나니 불행만을 한탄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앞 못 보는 자녀를 가진 부모나 형제는 더 말할 것도 없고 누구나 불행한 그들에게 대하여 뜻 있는 이가 이 책을 들쳐보고 그들을 일러주고 지도해 주는 이가 있다면 그 덕에 썩은 나무가 버림을 받지 아니할 것이오, 그 결과는 터럭 한 올을 뽑아서 천하를 이롭게 하는 공이 될 것이니 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리오. 그리하여 이 변변치 아니한 기록이 불행한 그들에게 대하여 어두운 밤에 등불이 되기를 바라고 미비한 점은 후일에 다시 살피기로 하고 내어 놓는다.

단기 4279년 10월 10일 박두성

<한글 점자의 규칙 >
한글의 원리와 같이 초성(자음 첫소리), 중성(모음), 종성(자음 받침)으로 이루어진다.
  • ㅇ 초성, 중성, 종성을 풀어쓰기로 나열한다.
    예) 한글→ ㅎㅏㄴㄱㅡㄹ
  • ㅇ 초성 ‘o’은 생략한다. (받침에서의 ‘o’은 사용한다.)
    예) 아→ ㅏ , 안녕→ ㅏㄴㄴㅕㅇ
  • ㅇ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읽는다.
자음, 첫소리, ㄱ: 4점, ㄴ: 1 4점, ㄷ: 2 4점, ㄹ: 5점, ㅁ: 1 5점, ㅂ: 4 5점, ㅅ: 6점, ㅈ: 4 6점, ㅊ: 5 6점, ㅋ: 1 2 4점, ㅌ: 1 2 5점, ㅍ: 1 4 5점, ㅎ: 2 4 5점, / 받침, ㄱ: 1점, ㄴ: 2 5점, ㄷ: 3 5점, ㄹ: 2점, ㅁ: 2 6점, ㅂ: 1 2점, ㅅ: 3점, ㅇ: 2 3 5 6점, ㅈ: 1 3점, ㅊ: 2 3점, ㅋ: 2 3 5점, ㅌ: 2 3 6점, ㅍ: 2 5 6점, ㅎ: 3 5 6점

▲ 훈맹정음(1926)
29.8×19.5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한 뒤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한 장으로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로줄에 자음, 가로줄에 모음을 배열하고 조합된 글자마다 그에 해당하는 점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서 아래에는 약자, 장음, 숫자의 점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모음, ㅏ:1 2 6점, ㅑ: 3 4 5점, ㅓ: 2 3 4점, ㅕ: 1 5 6점, ㅗ: 1 3 6점, ㅛ: 3 4 6점, ㅜ: 1 3 4점, ㅠ: 1 4 6점, ㅡ: 2 4 6점, ㅣ: 1 3 5점, ㅐ: 1 2 3 5점, ㅒ: 3 4 5점, 1 2 3 5점, ㅔ: 1 3 4 5점, ㅖ: 3 4점, ㅘ: 1 2 3 6점, ㅙ: 1 2 3 6점, ㅚ: 1 3 4 5 6점, ㅞ: 1 2 3 4점, 1 2 3 5점, ㅟ: 1 3 4점, , 1 2 3 5점, ㅢ: 2 4 5 6점

▲ 훈맹정음(1926)
29.8×19.5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한 뒤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한 장으로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로줄에 자음, 가로줄에 모음을 배열하고 조합된 글자마다 그에 해당하는 점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서 아래에는 약자, 장음, 숫자의 점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된소리: 6점

▲ 훈맹정음(1926)
29.8×19.5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한 뒤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한 장으로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로줄에 자음, 가로줄에 모음을 배열하고 조합된 글자마다 그에 해당하는 점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서 아래에는 약자, 장음, 숫자의 점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예) 한글, ㅎ: 2 4 5점, ㅏ:1 2 6점, ㄴ: 2 5점, ㄱ: 4점, ㅡ: 2 4 6점, ㄹ: 2점

▲ 훈맹정음(1926)
29.8×19.5cm, 등록문화유산 제800-2호,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박두성이 한글 점자 「훈맹정음」을 완성한 뒤 이를 널리 배포하기 위해 한 장으로 한글의 점자화 모양을 정리한 문서입니다.
세로줄에 자음, 가로줄에 모음을 배열하고 조합된 글자마다 그에 해당하는 점자를 보이고 있습니다. 문서 아래에는 약자, 장음, 숫자의 점자도 인쇄되어 있습니다.

훈맹정음이 발표된 이후 점자는 빠른 속도로 보급되었습니다. 1926년 박두성은 한글 점자로 된 『조선어독본(朝鮮語讀本)』을 펴내 시각장애인 들도 우리글을 배우고 민족의식을 키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가 평생 점자로 펴낸 책은 무려 76종에 이릅니다.『천자문』, 『편지틀』, 『명심 보감』, 『임꺽정전』, 『이솝우화』, 『3.1운동』 등 다양한 도서와 성서를 점역하였습니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소장 한글 점자 책 『3.1.운동』 표지와 펼친 책의 모습이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소장 한글 점자 책 『3.1.운동』 표지와 펼친 책의 모습이다.

▲ 한글 점자 책 『3.1운동』 (20세기 초)
26.8×19.0cm, 송암박두성기념관 소장

박두성이 남긴 유품으로 시각장애인을 위해 직접 저술한 한글 점자책이다.
삼일운동과 관련한 내용을 점자로 기록한 책으로, “이 역사 이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소장 한글 점자 책 『3.1.운동』 표지와 펼친 책의 모습이다.
송암박두성기념관 소장 한글 점자 책 『3.1.운동』 표지와 펼친 책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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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어둡다고 해서 마음까지 어두워선 안 된다.”

국립한글박물관은 한글 점자와 관련하여 『훈맹정음』, 『한글점자』, 『훈맹정음의 유래』, 『한글점자의 유래』 등 7건 14점의 등록문화유산뿐만 아니라 점자 관련 생활사 자료를 두루 소장하고 있습니다. 이 자료들은 박두성 선생님의 가족이 소중히 간직해오다가 2014년 한글박물관에 기증한 것입니다. 한글 점자 ‘훈맹정음’의 유래, 작성 원리, 그 구조 및 체계, 훈맹정음이 창안되어 실제로 사용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어, 당시 시각장애인들의 한글 학습을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시각장애인 학생들이 밤에 공부하다가 추위에 떨지 않도록 늘 밤늦게까지 교실의 난로를 확인하셨습니다. 손끝으로 점자를 읽을 때 종이가 너무 뾰족하면 아이들 손끝이 상할까 봐, 점자 하나하나가 동글동글하고 부드럽게 찍히도록 점판 도구를 직접 개량하기도 하셨죠.”

-딸 박정희 여사의 회고 인터뷰 중

박두성 선생님의 가족과 제자들은 생전의 그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하면서도 지독할 정도로 헌신적인 분’으로 기억합니다. 말년에 뇌졸중으로 쓰러져 세상을 떠나기 직전,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러했다고 전해집니다. “점자책은 쌓아두면 점자 부분이 납작해져서 읽을 수 없게 된다. 그러니 점자책은 쌓아두지 말고 꽂아두어라.” 죽음을 앞둔 순간까지도 그의 머릿속에는 오직 시각장애인들이 책을 잘 읽을 수 있을지에 대한 걱정뿐이었던 것입니다.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맹인은 무엇을 할가』 초고다.

▲ 『맹인은 무엇을 할가』 초고(1918년 추정, 박두성)
18.5×26.2cm, 국립한글박물관 소장

“세상에는 눈으로 보고 하는 일이 많지만 눈으로 보아야만 하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도리어 손으로 만져 보는 것이 눈으로 보는 것보다 틀림이 적다.”

올해는 박두성 선생님이 한글 점자를 만들어 세상에 알린 지 1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세종대왕이 만든 한글이 우리 모두의 말과 글이 되었듯, 박두성의 훈맹정음은 오늘도 누군가에게 세상을 읽는 창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야기하는 ‘모두를 위한 세상’,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사회’라는 가치를 그는 이미 100년 전에 몸소 실천한 것입니다.

주변 곳곳을 둘러보면 어렵지 않게 한글 점자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엘리베이터 버튼, 음료수 캔, 계단 난간, 약 봉투, 책 표지까지. 오늘은 가만히 멈추어 서서 눈으로만 보던 점자를 만져 보세요. 손끝 작은 점 하나하나에서 누군가의 어둠을 밝혀주기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친 박두성 선생님의 숭고한 사랑이 느껴지실 거예요.

<작성: 문영은 학예연구사>